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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잘하는 여자’ 심은하 숭실대 수학과 교수
이타적인 삶을 살고 싶어 끊임없이 자신의 자존심을 짓밟는 수학 공부를 택했다는 심은하 교수. 그의 선택은 미증유의 팬데믹 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현실적이지만 굳건한 마음을 가진 여성 수학자가 코로나19 대유행에서 세상에 기여하는 법.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기세가 무섭다. 국가수리과학연구소는 3월 초가 되면 국내 하루 신규 확진자가 20만 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예상까지 내놨다. 그런데 잠깐, 국가수리과학연구소라고? 맞다. 수학을 연구하는 바로 그 기관에서 최근 코로나19 유행에 대한 ‘수학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 연구 책임자가 바로 심은하 숭실대 수학과 교수다. 감염병 대응의 최전선에 서 있는 여성 수학자라니, 호기심에 인터뷰를 요청하자 심 교수는 흔쾌히 허락했다. 알고 보니 “언론 인터뷰나 대중 강연 제안이 들어오면 사양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린 학생들에게 여성 수학자 롤 모델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심은하 숭실대 수학과 교수가 2021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생산 지수를 계산해 발표한 논문의 일부. (A)는 백신 접종 여부에 따른 코로나19 치명률 변화를 시뮬레이션한 그래프, (B)는 백신 접종 후 연령별 치명률을 시뮬레이션한 그래프다.

그러고 보면 “여자는 선천적으로 남자에 비해 수학을 잘 못한다”고 믿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심 교수는 그 반례(反例)라고 할 만하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에서 수리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예일대 연구원을 거쳐 피츠버그대·털사대 등에서 교수로 일했다. 귀국 후 숭실대에 자리를 잡은 심 교수가 최근 주목받는 건 ‘감염병 확산과 예방에 대한 수학적 모델링 연구’ 분야 권위자이기 때문.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인 2020년 심 교수가 저명 학술지 ‘국제 감염질환 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Infectious Disease)’에 발표한 관련 논문은 올 2월 기준, 세계적으로 600회 넘게 인용됐다.

코로나19 확산 예측 모델을 직접 만드셨다고 들었습니다. 감염병이 어떻게 퍼져나갈지를 수학적으로 계산하는 게 가능한가요.

그럼요. 특정 연령대에 속한 사람이 다른 연령대 사람과 하루에 몇 번 정도 만나는지, 만나면 얼마나 밀접하게 접촉하는지 등에 대한 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수식을 만들어요. 다양한 변수를 반영해 만든 이런 수식을 활용해 감염병 전파 확률을 계산하는 거죠. 우리가 경험한 적 없는 코로나19 같은 신종 바이러스 대처법을 현실에서 직접 실험해볼 수는 없잖아요. 이럴 때는 수학에 기반을 둔 시뮬레이션 기법이 매우 유용한 방역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백신 공급량이 충분하지 않을 때는 어느 연령대에 집중적으로 백신을 투여해야 감염병 확산을 가장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을지를 예측하는 게 중요하죠.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부터 이 분야에 관심이 있으셨나요.

저는 생물 현상을 수학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하는 데 관심이 많아요. 그게 바로 수리생물학의 연구 분야죠. 코로나19 이전에는 ‘이타심과 백신 접종의 상관관계’를 밝혀내는 논문을 쓴 일이 있습니다. 제가 계산해보니 인간의 백신 접종 동기에서 이타심이 차지하는 비중이 30% 정도 되더군요. 우리가 백신을 맞을 때는 나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회 구성원을 위하겠다는 마음도 갖고 있다는 겁니다. 그걸 제가 수학적으로 증명한 거죠.

심 교수 얘기를 듣다 보니 문득 수학이 매우 재미있는 학문처럼 느껴졌다. 그는 “나는 사실 어릴 때부터 수학을 엄청 좋아했다”며 씩 웃었다.

수학이 재미있으셨다고요.

네(웃음). 어느 정도였느냐면 하루는 어머니가 제 방에 들어와 보니 제가 수학 문제집을 손이 안 닿는 책꽂이 맨 위에 숨겨놨더래요. 수학 문제집이 가까이 있으면 다른 과목 공부는 안 하고 계속 그것만 풀고 있으니, 저 스스로 방법을 찾아낸 거죠. 그 정도였어요. 수학만 하도 해서 암기과목 점수가 잘 안 나올 때도 있었죠.

대학에 갈 때도 자연스럽게 수학과를 선택하셨겠네요.

아니요. 대학 학부에서 원래는 생화학을 전공했어요. 저는 스무 살 때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갔어요. 그곳에서 ‘이민 1.5세’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다 의대나 약대에 진학하기 좋은 생화학과에 가기로 마음먹은 거죠. 그런데 알고 보니 생화학은 온통 실험이더라고요. 뒤늦게 알았는데 저는 실험에 전혀 소질이 없었고요.

그래서 도중에 전공을 바꾸셨나요.

네. 교양으로 수학 과목을 몇 개 들었는데 성적이 잘 나왔어요. 어느 날 수학과에서 편지가 왔더군요. “수학을 전공하면 장학금도 주고 조교도 시켜주겠다”는 내용이었어요. 생화학과에서는 저를 딱히 붙잡지도 않았는데 혼자 고민을 좀 했어요. 수학과로 가면 안정적인 직업을 갖지 못하게 될 것 같아서요. 그때 어머니가 “하고 싶은 걸 해야 잘된다”고 응원해주셔서 전공을 바꿨죠. 이미 4학년에 올라간 뒤라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요.

코로나19 이전부터 감염병 확산과 백신 접종 관련 연구를 하셨다고 했는데, 이 분야에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신 건가요.

대학원 석사과정에 다닐 때 어느 학회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관련 분야를 연구하시는 교수님 발표를 들었어요. 수리생물학이라는 분야가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는데 마음이 움직이더군요. 의사는 사람 한 명을 살리지만, 수리생물학자는 정책 설계에 영향을 미쳐 수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잖아요. 저는 현실적인 사람이에요. 순수학문을 하는 것도 좋지만, 학자로서 세상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수리생물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박사학위를 받은 뒤 한동안 피츠버그대 의대 연구원으로 일했다. 의대 연구원은 수학자로서는 제법 이례적인 행보다. 심 교수는 “그곳에 가니 학부 시절 쩔쩔매며 공부한 생화학 분야 지식이 큰 도움이 되더라”며 웃음 지었다. 서로 동떨어져 있던 인생의 점들이 선으로 연결되며 현재 감염병 연구의 기반이 된 셈이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최근 무서운 확산세를 보이고 있는 오미크론 변이로 옮겨갔다. 기자가 심 교수를 만난 2월 16일 기준 국내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9만443명, 10만 명 돌파가 목전이었다.

현재 오미크론 확산세를 어떻게 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오미크론 변이는 기초재생산 지수가 10이 넘어요. 전파력이 굉장히 강한 바이러스죠. 학계에서 “이 정도면 생화학 테러에 써도 될 만큼 위험하다”고 할 정도입니다. 지금도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지만, 3월 개학 무렵이 되면 확산세가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예상돼 걱정입니다.

그러면 고통스럽더라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는 게 맞을까요.

저는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거리두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모이는 걸 최소화하고 식당에서도 포장을 권해야 합니다. 학교 수업은 온라인으로 하면 좋겠고요.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최고의 수단은 거리두기입니다. 현재 국민들의 심리적인 피로감이 한계에 달한 건 알고 있어요. 정책적으로 거리두기 강화를 결정하기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한국이 그동안 방역 분야에서 쌓아온 성과가 있잖아요. 그것을 계속 이어가려면 지금은 거리두기를 강화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심 교수가 수학적 분석을 토대로 밝힌 의견이다. 심 교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현대 사회에서 수학은 상아탑 안에 갇힌 학문이 아니다. 실생활 곳곳에서 널리 활용된다. 그러나 상당수 학생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입시 과목 정도로만 여겨지는 게 현실. 일찌감치 수학 공부를 포기하는 학생, 이른바 ‘수포자’ 문제도 심각하다. 심 교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궁금했다.

2월 초 국제수학연맹(IMU)이 진행하는 수학 등급 평가에서 우리나라가 최고 등급(5그룹)을 받았다는 보도를 봤습니다. 수학올림피아드 수상 실적 등 여러 지표를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수학 강국’입니다. 그러나 정작 보통 학생들 사이에서는 수학이 외면당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수학이 입시의 피해자라는 생각을 해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의 변별력을 높이는 장치로 자주 사용되다 보니 학생들 사이에서 수학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진 거죠. 또 수학을 공부하는 게 취업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학이 취업을 위한 공간으로 변질된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이 현실이니 학생들만 탓하기는 어렵죠.

미국에서는 수학자들이 높은 연봉을 받으며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투자업계에서 수학자들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수학과 박사과정을 마칠 무렵이면 월스트리트 금융회사 곳곳에서 ‘퀀트(quantitative analyst·계량 업무 담당 애널리스트)’로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게 되죠. 저한테도 꽤 높은 연봉을 주겠다고 하는 곳이 있었는데 거절했어요. 제가 뜻한 바와 다른 일이니까요. 하지만 제 지인 가운데는 수학 전공 후 금융 분야로 진출한 사람이 여러 명 있습니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수학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고 계속 공부하게 할 방법이 있을까요.

저는 수학 교육과정에 코딩을 포함시키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제 수학을 코딩 없이 하기는 어려워요. 둘 다 논리적인 사고가 필요하다는 공통점도 있고요. 물론 컴퓨터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다 보면 수학적 직관이 다소 무뎌질 수 있지만, 수학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데는 코딩이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의 교수님처럼 수학 자체를 좋아하는 학생에게는 무슨 말씀을 해주시고 싶으세요.

문제풀이가 수학의 전부는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수학과 학생들에게 왜 수학을 전공하기로 마음먹었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답이 딱 떨어지는 게 좋아서”라고 해요. 안타까운 건 ‘답이 딱 떨어지는 수학’은 대학 입시와 함께 다 끝난다는 점이죠. 수학을 전공하고 난 뒤부터는 점점 증명과 논리가 중요해져요. 대학에서 시험 문제를 내보면 학생 대부분이 ‘χ를 구하라’ 같은 문제는 술술 푸는데 서술형을 굉장히 어려워합니다.

그럼 어떤 학생이 수학을 전공하는 게 좋을까요.

일단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과정 자체를 좋아해야 합니다. 문제를 빨리 풀기보다는 다르게 풀고 싶어 하는 창의적인 사람이 수학과에 잘 맞아요. 예를 들어 ‘삼색 신호등을 사색 신호등으로 바꾸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를 생각하는 사람, 이런 문제 풀이 과정을 논리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사람이 좋겠죠. 사실 이런 성향은 현행 입시제도로는 가려내기 어려워요. 수능은 문제를 빠르게 푸는 학생을 높게 평가하는 시험 방식이니까요.

심 교수는 이 대목에서 자신의 박사과정 시절 지도교수를 떠올리며 말을 이어갔다.

“당시 교수님은 세계적으로 높게 평가받는 수학자셨는데 제자들 앞에서 ‘수학은 굉장히 모욕적인 학문’이라고 자주 말씀하셨어요. 저도 그 말씀에 공감해요. 수학은 날마다 내가 얼마나 바보인지, 내 능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정말 쉬지 않고 알려주거든요. 그래서 수학을 공부하려면 마음의 근육을 길러야 해요. 자신의 독창적인 사고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끈기가 있는 사람이 수학과에 어울리는 것 같아요.”

교수님이 바로 그런 학생이셨나요.

글쎄요. 저는 그저 요즘 학생들이 ‘지쳤다’는 판단을 다소 빠르게 내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면 수학을 전공하기 힘들어요. 오늘 풀던 수학 문제, 내일 풀어도 잘 안 풀리잖아요(웃음). 쉽게 풀릴 거였으면 다른 누군가가 이미 풀어냈겠죠. 수학을 공부할 때는 ‘실패해도 괜찮아. 난 할 수 있고 다른 방식을 찾아내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할 거야’라는 마음가짐을 갖는 게 중요해요. 말하고 보니 비단 수학 공부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네요. 저는 잘 지치지 않는 강한 마음이 있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여자는 남자에 비해 수학을 잘 못한다”고 여기는 사람이 여전히 많습니다. 여성 수학자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무용학과에 남학생이 적다고 발레리노가 무용을 못하는 건 아니잖아요. 저는 발레를 좋아해서 공연을 보러 자주 가는 편인데 발레리노의 실력에 감탄할 때가 많아요. 개인의 기량은 전체 평균과 관계없이 그 자체로 평가해야 한다고 봐요.

한국의 어느 종합대학을 봐도 수학과에는 남자 교수님 수가 더 많아요. 하지만 그것이 남자 교수님보다 거기 계신 여자 교수님의 기량이 떨어진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아요. 최근 수학과에 진학하는 여학생 수가 늘고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이러한 편견이 점차 깨져나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여성동아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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