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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달력“나라 안에서 제일”현재 심사정 그림으로
표지 맹호도(猛虎圖): 1774년. 종이에 담채(96cm×55.1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호랑이 그림 중에서도 뛰어난 짜임새와 묘사력 을 보여준다. 형형하게 빛나는 눈빛, 용맹스러운 표 정, 전신을 감싼 터럭의 생생한 질감, 꼬리를 곤두 세우고 유연하게 몸을 틀어 앞을 노려보는 몸짓 등 이 팽팽한 긴장감을 주고 있다.

대종회는 2021년부터 달력을 만들어 일가들에게 배부하고 있다. 심문달력 디자인위원회(위원장 심익섭)는 2022년 임인년(壬寅年) 달력을 어떻게 만들지를 놓고 고심을 거듭했다. 그 결과 우리 선조 중 조선 화단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현재 심사정 (玄齋 沈師正·1707∼1769) 어른의 작품으로 달력을 만들기로 했다. 그림으로 달력을 만드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훌륭한 조상의 탁월한 그림으로 대종회가 달력을 만드는 것은 뜻깊은 일일 것이다. 심사정이 누구인지를 소개하고, 달력에 실을 그림 일부를 게재한다.

현재 심사정은 누구인가

1707년(숙종 33년)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청송(靑 松), 자는 이숙(頤叔), 호는 현재(玄齋)이다. 조선후 기 화가 겸재(謙齋) 정선(鄭敾), 관아재(觀我齋) 조영석(趙榮祏)과 더불어 3재로 일컬어진다. 심사정의 증조부 만사(晩沙) 심지원(沈之源)이 영의정을 지낸 명문 가문이었으나 심사정의 조부 심익창(沈 益昌)이 과거 시험 부정사건으로 귀양을 갔으며, 이 후 해배되어 돌아왔으나 연잉군(이후 영조) 시해 미수사건에 연루되면서 대역죄인의 집안으로 전락하였 다. 이런 집안의 내력 때문에 심사정의 일생은 불우 하게 보냈으며 당대 최고의 화가였지만 제대로 평가 받지 못했다. 1748년(영조 24) 숙종의 어진 보수를 위해 어진모사(御眞模寫) 중수도감(重修都監)이 설 치되면서 첫 관직인 감동관(監董官)에 임명되었으나 한달 만에 파직되고 말았다. 어려서는 정선의 문하에서 그림을 공부하였고 이후, 스스로 깨쳐 중국의 남종문인화(南宗文人畫)를 완벽하게 토착화시켜 새로운 문인화풍을 확립하였다. 그림은 화훼(花 卉), 초충(草蟲)을 비롯 영모(翎毛)와 산수에도 뛰어났다. 김홍도(金弘道)와 함께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화가산수화 150 여점을 비롯 총 300 여점의 작품이 전해지고 있다. (두산백과) 명문가의 후손으로 산수화뿐 아니라 화조화, 인물화에 이르기까지 못그리는 것이 없었던 심사정은 당시에 “나라 안에서 제일(國中第一)”인 문인화가로 평가받았다. 그는 평생 동안 대역죄인의 후손이라는 멍에를 쓰고 불행하게 살아야 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이를 극복하고 화파나 화법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 조선 후기의 어떤 화가보다도 다양한 화풍을 깊이 이해하고 폭넓게 수용하여 여러 분야에서 자신만의 개성적인 작품세계를 펼쳐보였다.

(한국의 미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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