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지역 향토사학자인 심정섭 씨가 1일 3·1절 103주년을 맞아 공개한 주식회사 조선상업은행 은행주권 등 친일경제자료 3점에 대해 역사적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
향토사학자 심정섭 씨 자료 공개
동양척식주식회사 임원 활동하며
각종 회사 만들어 부의 재창출
일제강점기에 동양척식주식회사(동척)의 임원으로 활동한 친일 경제인들이 일제의 수탈 첨병 노릇을 하며 부(富)를 얻었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자료들이 공개됐다.
3·1절 103주년을 맞아 수필가이자 향토사학자인 심정섭 씨(79)가 1일 일제강점기 친일 경제인 관련 자료를 발굴해 본보에 공개했다. 공개한 자료는 조진태의 주식회사 조선상업은행 은행주권, 백인기의 전북기업주식회사 기업주권, 한상룡의 조선생명보험주식회사 보험증권 등 3점이다. 증서 명의자 3명은 1908년 창립된 동척 고문, 감사로 활동했다.
동척은 조선 땅의 개간과 농업 발전을 돕는다는 명목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조선의 토지와 자원을 빼앗는 역할을 했다. 일제는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뒤 토지조사 사업을 먼저 실시했다. 일본인 지주가 차지한 토지 소유권을 보호하고 세금을 걷기 위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조선 정부, 왕실이 소유했던 토지가 조선총독부로 넘어갔고 이 땅을 동척이 다시 관리했다. 동척은 조선 농민들에게 땅을 빌려주거나 농장을 경영했다. 농민들은 많은 소작료를 내는 신세로 전락했고 일본인들에게는 땅을 헐값에 넘겨줬다. 이에 농민들은 1920∼1930년대 동척을 상대로 소작쟁의 저항 운동을 펼쳤다.
당시 일제강점기 경제계 3대 거상이었던 조진태(1853∼1933)는 동척 설립위원, 감사를 지냈다. 조진태가 1919년 11월 발행한 조선상업은행 은행주권의 금액은 2500원이다. 은행주권 발행번호는 2호인데 주주가 이왕직(李王職) 장관이다. 이왕직은 일제강점기 조선 왕가와 관련된 사무를 담당하던 기구다. 심 씨는 “조선상업은행 은행주권 1호의 주주는 조선총독”이라며 “조선상업은행은 일제강점기 민족계 은행 말살을 도모하는 동시에 민족계 은행에 대한 일본 자본의 침투·지배를 강화하려고 조선총독부가 만들었다”고 말했다.
동척 감사를 지낸 백인기(1882∼1942)가 1928년 1월 발행한 전북기업주식회사 기업주권의 금액은 50원이다. 그는 조선총독부 자문기관인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이 밖에 동척 고문으로 활동한 한상룡(1880∼1947)이 1939년 5월 발행한 조선생명보험주식회사 보험증권의 금액은 1000원이다. 그는 서울 출신으로 대표적 친일파 이완용의 외숙이며 중추원 참의, 일본제국의회 귀족원 의원을 지낸 조선경제계 친일 거두이다.
최성환 목포대 사학과 교수는 “이런 자료는 친일 경제인들이 동척 등 일제 기반을 토대로 각종 회사를 만들어 부를 재창출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동척 목포지점이 있던 전남 목포에서는 1897년 목포항이 개항할 당시 일본인 경찰이 총포를 다루는 회사를 만들어 큰돈을 벌어 지역 유지로 살았다고 설명했다. 또 목포세관에 근무하던 일본인 공무원은 조선인들과 모임을 만든 뒤 동척 자금을 통해 땅을 사들여 대주주가 됐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동척이 설립 초기에는 조선 토지, 자본을 수탈하는 역할을 했지만 1917∼1920년부터는 은행 업무와 농장 경영 등으로 사업을 다변화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친일 경제인들은 동척 등 일제 권력과 밀착돼 쌓인 부를 나눴다는 것이다. 심 씨는 “은행주권 등은 친일 경제인이 일제의 조선경제 수탈 첨병 역할을 한 것을 입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출처=동아일보, 2022.3.2. 이형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