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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정공 선무공신파(僉正公·宣武功臣派) 宗中 探訪

 

첨정공 선무공신파

會長 沈 載 圭

형제농원(소나무전문)경영(經營)

고창군 3, 4대 군의원

- 종회 설립동기와 목적

1988121일 선무공신 휘:우신(諱 友信)의 구국희생정신과 덕업을 숭모하고 선영(先塋)을 보호하며, 선조님들의 유업을 계승하고 자긍심을 살려 후손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여 종원 상호간의 화목을 돈독히 하기 위하여 본 종회를 설립하였다.

 

 

- 종회 구성원

 

 

본 종회의 구성원은 11世祖 첨정공 휘:우신(僉正公 諱:友信)의 출생지인 김포를 비롯하여 장성, 부안, 포천지역 등에 거주하고 있으며 종회구성은 다음과 같다.

顧問(相執) 會長(載圭) 副會長(雨燮 殷燮) 監査(載聖) 總務(載瑩) 財務(泰燮) 理事(相仁 輝燮 孝燮 贊燮 京燮 正熙 載澈 載玉 載君 昌善)

* 첨정(僉正) : 조선시대 돈녕부·훈련원 등에 두었던 종4품직

* 宣武功臣 :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신하들을 표창한 훈호(勳號)

 

 

- 종회연혁

 

 

1713(숙종 39) 장천원 창건

1988년 청송심씨 선무공신파 종중설립

1989년 장천원 유허지 상무대 수용

1990년 장천사 이건 표의사로 개명

1996년 심우신 장군 동상 건립(상무대내 정문 우측 경내)

2001년 표의사(彪義祠) 보수공사

2016년 표의사 2차 보수공사(主管 會長 載圭)

 

 

僉正公(宣武功臣) 沈友信 將軍行蹟

 

 

 

1) 첨정공의 가계도

5世 溫(안효공)-6世 澮(공숙공)-7世 瀚(이경공)-8世 順徑(호양공은 판관공 의 차남 出系)-9世 興源(진사공)-10世 鐩(곡산공은 수찬공 達源4出系)-11世 友信(곡산공의 5남 중 3)-12世 詡, , 2)

 

 

2) 장군의 행적

 

 

심우신 장군께서는 안효공의 6대손으로 中宗 39(1544821) 경기도 김포에서 곡산군수(谷山郡守) :(:)와 박씨 정랑 박종호의 딸) 사이에서 5남 중 3남으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용모가 준수하고 명석하여 일찍 문장을 습득하였고, 필법에도 능하였으며 활쏘기에도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1567(宣祖 元年)년 무과에 급제한 후 선전관과 웅진현령 등을 거쳐 군기시첨정(현재의 국방부 4급 공무원)이 되었다.

1591년 모친상을 맞아 관직을 사임하고 상제로서 집상 중 이었으나 1592(宣祖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포의 가재를 정리하고, 가족을 이끌고 해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와 군기와 군량을 확보하고 창의(倡義-국난을 당했을 때 나라를 위해 의병을 일으킴)한 곳이 지금의 전남 장성군 삼서면 학성리이다. 표의의 기치를 높이 들고 의병 수천 명을 모집하여 한 달 동안의 훈련을 마치고 出兵한 곳이 바로 현 장성군 포병학교 포술훈련장이다.

15929월 출병한 표의 의병은 同年 101일 청주성을 탈환하고 황간 전투에서 고바야가와, 모리 데루모도가 이끄는 왜군과 여러 차례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한성수복을 위해 전진하던 중 수원의 독성산성에 있던 권율 장군의 연락을 받고 출전하여 독성산성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1593년 창의사 김천일 장군과 만나 생사를 함께하기로 맹세하고 왜적을 추격하던 중 남양도호부 부사 겸 기보 진무사를 제수 받았으나 벼슬에 관심이 없는 공께서는 이를 사양하고 한성의 보루(堡壘) 하삼도(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관문인 진주성을 지키기 위하여 진주성에 입성 동문 파수장이 되었다.

15936월 마침내 싸움은 시작되었다.

의병의 결사 항전으로 왜적의 시체는 산처럼 쌓여 가는데도 왜군은 물러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공방전이 20여 일이나 계속되었다. 군량이 떨어진 상태에서 최후의 순간이 다가왔다. ~이를 어쩌랴!

그 때 촉석루에 창의사 김천일 장군을 비롯한 여러 장군이 왜적의 칼날에 죽느니 자결하겠다며 남강에 뛰어 들었다.

그러나 표의장군심우신(彪義將軍沈友信)께서는 나는 무인이니 헛되이 죽을 수 없다면서 東門으로 뛰어갔다.

1593629일 최후의 일각까지 적과 싸우다가 화살이 다하고 시위가 끊어지자 北向四拜 후 함께했던 의병들과 함께 남강에 그 푸른 기개를 던졌다. 그때 의 나이는 50세였다.

1605(宣祖38) 선무원종 1등 공신 증 판결사·병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총관으로 추증되었다.

 

 

3) 첨정공 선무공신의 유적

 

 

- 장천사(長川祠)

장성군 삼서면 학성리 567-1번지 (상무대 편입)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한 표의장 沈友信將軍의 절의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1652(孝宗 3)에 창건한 사우다.

* 사우(祠宇)-따로 세운 사당집

 

 

- 표의사(彪義祠)

 

 

장성군 삼서면 유평리373(부구마을)

장천사지 일대가 마침내 상무대에 편입되어 부득이 1990년 장천사 를 본손 세거지인 현 위치로 옮겨 사당, 관일당, 충의문, 충절문, 관리사, 강당, 경첨재, 외삼문, 충의문을 짓고 표의사(彪義祠)로 개명현판하고 배향한 사우다. * 배향(配享)-종묘에 공신의 신주(神主)를 모심

 

 

4) 심우신 장군 동상(沈友信 將軍 銅像)

 

 

보병, 포병 통신병과학교가 설치된 상무대(尙武臺)는 대한민국 육군의 군사 교육 및 훈련 시설이며 "상무대란 무용을 숭상하는 배움의 터전"이라는 뜻이다. 상무대경내에 세운 장군의 동상은 이곳에서 훈련과 교육을 받는 장병들의 정신무장의 표상(表象)이 되고 있다.

 

 

5) 장군의 묘소

 

 

장군께서 장남 후()에게 남긴 유언에 따라 의이초혼예(衣履招魂禮)를 올리고 영광 長川祠 소재 내서면 봉루동 진좌에 배(配 全州李氏)와 합장하였으며 의병모집과 의병훈련에 손발이 되었던 배(配 長興林氏) 할머니는 그 좌측에 쌍봉으로 조성하였다가 현 위치로 천장(遷葬)하였다.

* 의리초혼예(衣履招魂禮) : 시신을 대신하여 생전에 입었던 옷과 신으로 초혼제를 지내고 장사(葬事)를 지냄

* 의리(衣履) : 장군의 옷과 신발

 

 

- 탐방후기

 

 

지면관계로 귀 종중의 우수활동사례, 건의사항 등을 게재하지 못함을 송구스럽게 생각하면서 표의 장군의 애국심 발현에 힘쓰는 귀 종중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탐방취재: 종보편집위원 심수영



▲첨정공 우신 동상 앞에서


▲첨정공 사당


▲첨정공 묘소 증정부인전주이씨 정부인장흥임씨 합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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