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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우리 청송심가 이야기(13)

자기 자신을 이기자
- 봉원(逢源) 할아버지의 심기안정법(心氣安定法)

                        

沈厚燮 (아동문학가・교육학박사)

얘야, 너는 자신을 잘 가꾸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본 적이 있니? 즉 어떻게 하면 지혜로워지거나 건강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대해 계획을 세워 그대로 실천해 본 적이 있느냐 하는 거야?

많은 사람들이 계획을 세우기는 하지. 그런데 며칠 가지 못하고 흐지브지 말아 넣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이런 경우에 우리는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고 해. ‘한 번 결심한 일을 겨우 3일에 그친다.’는 뜻이지.
그런데 이 말은 우리 9세조 봉원 할아버지에게는 통하지 않았어. 봉원 할아버지는 한번 결심한 일은 돌아가시는 날까지도 끝까지 지키셨어.
봉원 할아버지는 1497년(연산군 3)에 태어나셔서 1574년(선조 7)년에 돌아가셨으니 77세를 사셨어. 의약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그 당시 형편으로는 아주 장수하셨다고 볼 수 있어. 그 무렵에는 평균 수명이 매우 짧아서 61세만 되어도 잔치를 열 정도였고, 좋은 음식에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이라 하더라도 4-50을 채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거든.
봉원 할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회(澮) 할아버지의 증손자로서 조부님은 원(湲), 아버지는 사인(舍人) 순문(順門)이셨어. 어머니는 평산신씨(平山申氏) 감찰 신영석(申永錫)의 따님이셨고…. 영의정 연원(連源) 할아버지와 좌의정 통원(通源) 할아버지의 동생이기도 하시지.
장가 든 후 다르게 불리는 이름인 자(字)는 희용(希容), 일반적으로 불리는 호(號)는 효창노인(曉窓老人) 또는 우송(友松)이셨어. 이 호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소나무와 더불어 지낸다는 뜻이 들어있어.
어려서는 매우 개구쟁이어서 악동들과 어울려 놀기를 즐겼다고 해. 참외서리를 하다가 하마터면 관가로 잡혀갈 뻔 했다고도 해. 그래서 어머니로부터 여러 번 혼이 났다는 구나.
그러던 어느 날 봉원 할아버지는 무릎을 치며 주먹을 굳게 쥐셨대.
“아이고, 이러다가는 내가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겠구나.”
그 뒤부터는 굳은 마음으로 열심히 책을 읽어서 마침내 스무 살이 되었을 때에는 성균관에 들어가 학문을 익힐 수 있게 되셨어.
1537년(중종 32)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가 되었고 의정부사록(議政府司錄)을 겸하셨고, 이듬해 탁영시(擢英試)에 병과로 발탁되어 사과(司果)에 제수되셨어.
그 뒤 정언(正言)을 거쳐 인종이 즉위하자, 헌납(獻納)이 되어 경연에서 기묘사화 때 억울하게 처단된 조광조(趙光祖)의 신원을 회복시키도록 하셨어.
명종이 즉위하였을 때에는 소윤(小尹)의 편에 서서 대윤(大尹)의 거두로서 권세를 부리던 유인숙(柳仁淑) 등을 탄핵하는데도 참여하셨어.
이어서 장령(掌令)·교리(校理)·사간·사예(司藝)·전한(典翰) 등 요직을 두루 역임하시고, 1553년(명종 8) 승정원에 들어가 왕의 측근에서 오랫동안 보필하셨어. 그 뒤 예조참의·동지돈녕부사를 역임하다가 노환으로 사임하셨어.
벼슬에서 물러난 뒤에는 화산(華山) 기슭에 집을 짓고 산수(山水)를 즐기며 여생을 보내셨는데 하얀 수염을 날리며 가벼운 몸으로 산을 오르내리셨대. 그래서 사람들은 봉원 할아버지를 가리켜 ‘신선(神仙)이다, 도사(道士)이다.’라고 불렀대.
그런데 이는 그냥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었어. 옷은 반드시 무게를 달아 무겁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게 지어 입었으며 밥도 반드시 숟가락을 세어서 먹었으며, 씹는 것도 그 속도나 회수가 정해져 있었다고 해. 뿐만 아니라 동작과 휴식 또한 알맞게 조절하였고 마음을 쓰는 것도 결코 무리하지 않으셨대.
마음을 가라앉히는 한편 음률(音律)·의술(醫術)·서법(書法)등을 갈고 닦으셔서 또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셨어.
이렇게 규칙적인 생활을 하신 데에는 봉원 할아버지가 서른 살에 병이 들어 10년간 폐인 노릇을 하면서 터득한 심기안정법을 꾸준히 체질화하신 덕분이래. 심기안정법이라는 마음에서 일으키는 욕심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조절하는 법이래.
대제학 노수신(盧守愼, 1515~1590)이 쓴 봉원 할아버지의 묘비명에 따르면 젊었을 때에는 병이 들어 제대로 걷지 못해 옷을 끌고 다니는 것처럼 보였으나 굳은 마음으로 자신의 몸을 추슬러 십여 년 전에 읽었던 책도 모두 또렷이 떠올릴 수 있게 되었는데 <논어(論語)>를 비롯한 많은 책을 보지 않고도 끝까지 다 외우실 정도였다고 해. 그러니 봉원 할아버지의 심기가 얼마나 굳은 지를 짐작할 수 있어.

봉원 할배 묘소(고양시 덕양구 원흥동 소재)

고양시 덕양구 원흥동에 있는 봉원 할아버지의 묘소 앞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직함이 새겨져 있어.
贈崇政大夫議政府左贊成 兼 判義禁府事世子貳師弘文館大提學知經筵春秋館成均館事行嘉善大夫 同知敦寧府事(증숭정대부의정부좌찬성 겸 판의금부사세자이사홍문관대제학지경연춘추관성균관사행가선대부 동지돈녕부사)
靑松沈公諱逢源 贈貞敬夫人慶州金氏之墓(청송심공휘봉원 증정경부인경주김씨지묘)

그래, 그러고 보니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이겨내는 사람이다.’라는 말이 떠오르는구나. 사람은 더러 나쁜 유혹에 빠져 자신을 놓쳐버리는 경우가 있지. 언제나 철저한 자기 관리가 중요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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