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할머니의 뿌리도 소중한 것 아닌가요.”
아들 가족을 데려가고 싶은 심숙희 씨 / 앞줄 왼쪽부터 아들 병윤, 숙희 씨, 며느리 이미나 씨, 뒷줄 왼쪽부터 손자 김예원(고2), 손녀 예은(대학2), 예슬(대학4), 예담(고3) |
“아버지가 오랫동안 생존해 계시면서 나를 잘 돌봐주셨다면, 오늘날의 내가 있었을까요?”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대개 어려움을 딛고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경기도 안성에서 <밝은집요양원>을 운영하는 심숙희(沈淑熙·67) 일가도 그렇다. 비록 여자이긴 하지만 10월 5일 ‘청송심씨 한마음대회’에 거는 기대는 누구 못지않다. 가족들을 모두 데려가고 싶다고 했다.
“시아버지가 나를 처음 보시고는 ‘청송 심씨’라고 하니 매우 좋아하셨습니다. 그때 청송 심씨가 대단한 집안이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일본 강점기 때 징병을 나갔던 아버지는 귀국했으나 숙희 씨가 7살 때 돌아가셨다. 2남 2녀 중 맨 위의 오빠만 안성에 남고 언니와 본인, 남동생은 강원도 원주에서 목회활동을 하는 고모부가 거둬줬다. 낮에는 돈을 벌고 밤에는 야간중학을 다녔다. 그러나 지금은 복지경영학 석사학위를 가진 어엿한 요양원 원장님이시다.
안성에서는 그를 ‘사회복지의 대모’라고 부른다. 3년간 안성시 사회복지협의회 회장, 9년간 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 경기남부지부장(안성 용인 평택 오산 화성)을 지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보건복지부장관상을 비롯해 상도 참 많이 받았다. 며느리 이미나 씨(46)는 “시어머니는 당신이 못 했거나 모르는 것에 대한 ‘갈증’이 심해서, 꼭 해야 하고, 알고야 마는 열정이 강하다”고 했다.
숙희 씨는 1973년 안성 공도 출신인 목회자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2000년 1월 별세). 화성에서 목회 활동을 하다 1989년 안성으로 옮겨와 요양원도 열었다. 요양원은 본인이 운영하고 요양원안의 산우물교회는 목사인 아들 병윤 씨(46)가 인도하고 있다. 병윤 씨는 3녀 1남을 뒀다.
숙희 씨는 무엇보다 <밝은집요양원>이 4년 연속 최우수평가를 받은 것이 자랑스럽다. 이 요양원에는 현재 60여 명이 생활하고 있다. 숙희 씨는 30여년 간 450여명을 직접 입관했을 정도로 정성을 쏟고 있다. 그것이 30여 명 가까운 직원들을 통솔하는 법이기도 하다.
“지금 내 나이의 여자가 누가 뿌리를 찾겠습니까. 그러나 엄마와 할머니의 뿌리를 다른 성을 가진 아들과 손자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습니다. 나는 참 열심히 살아왔다는 것도 조상 묘앞에서 보고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