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鶴松 심의성(沈宜聖, 1899~1976)의 애족가(愛族歌)

‘애족가’ 출처 : 청송심씨 돈목회,

<靑松報> 2집(1955년 발행), 29쪽

심의성 선생

 

 

 

 

애족가(愛族歌)  -심의성 作-

1. 普光山의 저 소나무 四時長靑 변함없이

능상오설(凌霜傲雪) 푸른 것은 우리 沈氏 기상일세

2. 得姓이래 삼천여년 우리 大韓 大姓으로

혁혁(赫赫)하게 계승함은 우리 선조 음덕일세

3. 청송심씨 독목회(敦睦會)는 선조 유심(遺心) 유전(遺傳)하야

만인일심 돈목하여 서루서루 사랑하세

(후렴) 우리 대한 수만인의

우리 종족 청송 심씨

종족으로 자손만대

기리기리 보전하세

해설) 심의성 선조는 청송심씨 도총제공파 후손으로, 주요 세거지 原州에서 거주하셨다. 현재 대종회 심상현 부회장의 조부이시다.

원주지역 청송심씨 집성촌인 소초면 일대에서 3.1운동을 주도한 심의성 선생은 청송심씨 돈목회(대종회) 활동에 열성적이었고, 돈목회의 <靑松報>에 종족 간의 친화를 얘기하는 내용의 회두시(回頭詩)를 많이 발표하였다. 그리고 소초면의 3.1운동을 주도한 분으로서 당시를 회고한 육필원고를 남겨서 원주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 원주 소초면 독립운동 기록>

소초면사무소 앞마당에 세워진 소초면 독립만세 기념비

1919년 3월1일 독립선언을 기점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때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에서도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3월20일경 천도교구장 최종화와 천도교인을 비롯한 지역면민들은 횡성과 소초에서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3월27일 장꾼으로 가장하여 횡성장터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때 결렬한 시위행진을 주도하며 선봉에 섰던 강만형이 현장에서 체포 되었고, 다시 4월1일 반대시위를 강행 하였을 때 강달희, 하영현이 일본군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이에 굴하지 않고 의병으로 활동했던 마을 훈장 박영하, 심의성, 신현철 등을 주축으로 한 소초면민 약 400여 명은 마침내 4월5일 부재고개에 집결하여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소초면 사무소를 향해 나아갔다.

시위대의 김동혁, 김춘배, 김인배는 소초면장 남상철을 강제로 시위에 동참시키고, 박영하의 선창으로 소초면민들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자주독립 의지를 만천하에 알렸다. 체포된 강만영은 고문으로 옥사했고, 소초 독립만세운동의 주동자들은 대부분 일본헌병에 체포되어 참옥한 고문으로 살점이 벗겨지거나 참혹한 태형과 징역형을 복역하는 등 형언하기 어려운 고초를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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