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3년 심처량 별급문기
別給文記란 조선 시대에 재산을 증여할 때 사용하던 문서 양식. 특별한 사유로 재산을 줄 때 작성하며, 문기의 작성 연월일, 별급 대상자의 성명, 별급의 사유, 별급 재산의 표시, 당부의 말, 재주(財主)ㆍ증인(證人)ㆍ필집(筆執)의 성명과 수결(手決) 따위를 기록하였다. |
1) 문서개요
ㅇ. 문 서 명 : 별급문기(別給文記)
ㅇ. 작성연대 : 1693년(肅宗 19)
ㅇ. 발 급 자 : 아버지 심박(沈樸)
ㅇ. 수 취 자 : 아들 심처량(沈處良)
2) 해 제
1693년(숙종 19) 아버지 심박(沈樸)이 아들 심처량(沈處良)의 사마시(司馬試) 합격을 축하하기 위하여 친인척 등 고관대작들이 참석한 가운데 잔치를 베풀고 그들을 증인으로 세워 재산을 증여하는 문서.
별급문기(別給文記)는 과거 합격, 혼인, 득남(得男), 효행 등의 이유로 이를 축하하고 칭찬하기 위하여 별도로 재산을 증여하는 문서이다. 재산을 상속하는 문서를 분재기(分財記)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부모가 생전에 자식에게 각각의 몫을 나누어주는 깃급문기(衿給文記), 부모 사후 자식들이 합의하여 재산을 나누는 화회문기(和會文記) 등이 있다.
이 문서 상에 나타난 증여의 이유는 아들의 사마시 입격을 축하하기 위함이다. 별급(別給)이라고는 하나 엄청난 양의 전답과 노비를 증여하고 있어, 청송(靑松) 심씨 심박(沈樸) 가문의 경제력을 가늠할 수 있다. 더 흥미로운 점은 분재기에 증인으로 참여한 인물들의 면모이다. 총 24명 인물이 증인으로 참석하여 모두 자필로 관직과 성 혹은 성명, 사인을 남기고 있다. 정1품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우의정(右議政) 등 고관들이 품계순으로 기록되었는데, 말미에는 통사랑(通仕郞), 통덕랑(通德郞) 등의 하급직 인물들도 보인다. 비록 품계는 낮을 지라도 학문기관에 배속 받은 이들은 좋은 점수로 과거에 합격하였거나 벌열 가문의 자제로서 장래가 촉망되는 신예 관리들로 보인다. 아들의 사마시 합격을 축하하기 위해 크게 잔치를 벌여 고관과 귀한 집안의 자제들을 초청하여 함께 별급문기를 작성하고 있는 아버지 심박의 모습을 이 문서를 통해 상상해 볼 수 있다.
심박은 재산의 주인이란 의미의 재주(財主)이자 문서의 실제 기록자인 필집(筆執)을 겸하고 있으며, 조선시대 종2품의 하계(下階) 문관의 품계인 가선대부(嘉善大夫)이다. 관직은 용양위부호군과 오위도총부위 부총관을 겸하고 있다.
증여한 재산은 토지와 노비이며, 토지는 소재지와 토지대장상의 지번에 해당하는 자번(字番), 규모 그리고 그 토지가 논인지 밭인지, 무슨 밭인지를 자세히 밝혀 적었다. 면적을 기록한 단위는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먼저 공식 면적 단위인 결부법(結負法)에 근거한 결(結)·부(負)·속(束)이 사용되었다. 이는 곡식 수확량과 전지 면적 및 조세 수취를 연결 파악하는 단위로, 화곡(禾穀) 1악(握)을 1파(把), 10파를 1속(束), 10속을 1부(負) 혹은 1복(卜), 1백부를 1결(結)이라 함과 동시에, 1결을 생산해 낼 수 있는 전지의 단위 면적 및 그러한 단위 면적을 대상으로 조세를 부과하기도 하는 우리나라 특유의 법제였다. 다음으로는 민간에서 더 쉽게 사용된 두락(斗落)의 단위가 있다. 두락 혹은 두락지(斗落只)는 마지기의 차자(借字) 표기로, 볍씨 한 말로 모를 부어 낼 수 있는 논의 넓이 혹은 한 말의 씨를 뿌릴 만한 넓이의 밭의 면적을 말한다. 더 큰 단위로는 섬지기를 의미하는 석락지(石落只), 작은 것으로는 되지기를 의미하는 승낙지(升落只)가 있다. 이외에도 노동시간으로 면적을 재는 단위인 일경(日耕)도 사용되었는데, 이는 논밭을 가는 데 걸린 시간을 단위로 면적을 말하는 방식이다. 단위는 주로 하루가 기준이 된다.
3) 번 역
전문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번거로운 한자 병기는 모두 생략하였다.
강희32년 계유 10월 12일 아들 처량에게 주는 성문
이 글은 분재기를 작성하는 것이다. 내가 이미 외로우며 백발이 되었고, 너 또한 뜻한 바를 이루어서 나와 네가 오직 서로 의지하였다. 세월이 흘러 네가 장성함에 대단한 질병을 면한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네가 이번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각이 옛날에 미치니 어찌 슬퍼함과 기뻐함을 다 감당할 수 있겠는가? 이에 충주 금생면 소묘동 소재 조자답 15두락지과 또 2두락지, 읍내 미륵당 공자답 10두락지, 금생면 화동 반자답 5두락지, 소을파면 갑술(1694년)양안 상의 곤자답이고 기사양안 상의 칭자답 20두락지, 대묘동 지자답 10두락지, 가좌리 작자전 1일경, 동(同) 작자답 2두락지, 오목리 ○자답 9두락지, 불정포전 2일경, 북부 도원 신자전 2일경, 서지동 ○자전 반일경, 탄금대 갑술양안 상의 징자이고 기사양안 상의 금자전 1일경, 오목리 ○자전 1일경, 화동 ○자전 1일경, 종포 ○전 1일경, 기전 ○전 반일경, 금천면 신창 ○포전 2일경, 면천 덕두 ○자전 5일경과 답 50두락지, 죽림 기자전 반일경, 득자답 7두락지, 박자답 9두락지, 유자답 9두락지, 여자전 1일경, 천자답 4두락지, 송자전 1일경, 여자답 5두락지, 개자답 7두락지, 음자전 가을보리 15두락지, 홍주 합북면 회대동 출자답 7두락지, 래자답 7두락지, 비 종개 2소생 비 옥지 갑진생, 비 계일 3소생 비 건이덕 임자생, 비 순옥 ○○생, 순옥 소생 노 선이 ○○생, 비 임이 ○○생, 비 신절 ○○생, 신절 1소생 노 세웅 나이 12세, 신절 소생 노 초웅 나이 6세, 신절 3소생 노 계웅 나이 4세, 비 승례 ○○생, 승례의 1소생 비 ○○생, 승례 2소생 노 말선 나이 17세, 승례 3소생 비 사일 ○○생, 승례의 4소생 노 석생 ○○생, 비 이대 ○○생, 노 이남 ○○생, 비 이례 ○○생 등과 이들의 이후 소생까지를 함께 영영 허급하여 나의 기뻐하는 마음을 표시한다.
재주 자필 부 가선대부행용양위부호군 겸 오위도총부부총관 심(沈) 착명(着名)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우의정 겸 영경연사 감춘추관사 민(閔) 착명(着名)서압(署押)
숭록대부 판중추부사 겸 지경연사 동지성균관사 세자우빈객 심(沈) 착명서압
숭정대부 행 호조판서 겸 판의금부사 지경연사 세자좌부빈객 오(吳) 착명서압
정헌대부 공조판서 겸 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도총관 정(鄭) 착명서압
자헌대부 예조판서 겸 동지경연사 유(柳) 착명서압
가의대부 경기관찰사 겸 순찰사 병마수군절도사 개성부유수 강화부유수 심(沈) 착명
가선대부 형조참판 민(閔) 착명서압
가선대부 예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부총관 목(睦) 착명서압
통정대부 승정원좌승지 지제교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수찬관 이(李) 착명서압
통정대부 승정원우승지 지제교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수찬관 심(沈) 착명서압
통정대부 공조참의 원(元) 착명서압
통정대부 이조참의 지제교 민(閔) 착명서압
통정대부 호조참의 지제교 권(權) 착명서압
통훈대부 행 홍문관응교제지교 겸 경연시독관 심계량(沈季良) 착명
조봉대부 의정부사인 겸 서학교수 박정(朴涏) 착명서압
조봉대부 행 홍문관부교리 지제교 겸 경연시독관 교서관교리 한학교수 동학교수 세자시강원문학 민흥도(閔興道) 착명서압
조산대부 행 병조정랑 지제교 겸 교서관교리 홍중하(洪重夏) 착명서압
건공장군 행 용양위부사과 최경중(崔敬中) 착명서압
봉렬대부 행 병조정랑 홍중정(洪重鼎) 착명서압
통훈대부 행 홍문관수찬 지제교 겸 경연검토관 유재(柳裁) 착명서압
계공랑 행 교서관박사 맹양호(孟養浩) 착명서압
통사랑 행 성균관학정 원치도(元致道) 착명서압
통덕랑 행 승문원저작 정해상(鼎海尙) 착명서압
권지승문원부정자 조봉대부 홍중주(洪重周) 착명서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