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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일송상공(諱: 喜壽 11世祖 )과 기생 일타홍의 사랑

1. 일타홍·심희수(喜壽)와의 만남

공의 휘는 희수(喜壽)요, 자는 백구(伯懼)이며 호는 일송(一松)이니 청송심씨로 고려조 때 위위시승(衛尉寺丞) 홍부(洪孚)의 주손이다.

3대를 전하여 청성백(靑城伯)이신 덕부(德符)와 안효공(安孝公)이신 온(溫)과 공숙공(恭肅公)이신 회(澮) 3대는 정승으로 음덕이 역사에 실려있다. 고조의 휘는 원(湲)인데 내자시판관(內資寺判官)으로 증직이 좌찬성(左贊成)이고, 증조의 휘는 순문(順門)인데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으로 증직이 영의정(領議政)이다.

조부의 휘는 봉원(逢源)이고, 호가 효창(曉窓)이며 두 번 급제하여 영달한 업적을 거두고 졸하였으니 벼슬이 동지돈영부사(同知敦領府事)이고, 증직이 좌찬성(左贊成)이다.

아버지의 휘는 건(鍵)인데 문학으로써 등과 하였으나 일찍이 졸하여 증직으로 영의정이었으니 양 대의 증직을 받음은 공이 귀하게 된 까닭이며 어머니는 탄수(灘叟) 이연경의 따님이시다.

명종무신 1548년에 태어나서 공이 세 살 때 의정공께서 타계하니 찬성공이 엄하게 기르시고 교도함이 심히 지극하였다.

명문가의 저택답게 소슬 대문이 웅장하고 육간대청의 안채가 우람한데 집안 구석구석이 손을 보지 않아 퇴락 할대로 퇴락하여 그 몰골이 말이 아니다.

안채에서는 60대는 되어 보이는 노마님과 앳된 얼굴에 예쁘장한 한 여인이 노마님과 마주하고 앉아있다. 수심이 가득 차 보이는 노마님은 심희수의 어머니이고 젊은 여인은 심희수의 일로 노마님을 찾아온 여인으로 시골서 한양으로 갓 올라온 기녀 일타홍이다.

이렇게 심희수 일로 두 여인이 한자리에 앉아 의논하게 된 연유는 대개 이러하다.

새싹들이 파릇파릇 솟아나는 늦은 봄 어느 날 서대문밖 진관사(津寬寺)에서는 권신(權臣) 7~8명이 시회(詩會)를 열고 한가로이 주연을 즐기고 있었다. 한참 흥을 돋우고 있을 때 느닷없이 더벅머리총각 하나가 나타나

“술 한 잔 얻어먹으려고 왔습니다.”

하며 자리를 함께하자고 억지를 부리니 노객들은 한 결 같이 불쾌해 하였다.

이날 연회에 주인 격인 權대감은 심희수의 무례한 짓을 나무라며 호통을 치고 있을 때였다. 그때 그 자리에 있던 노객 중 한 명이 심총각이 개국공신 청성백(靑城伯) 후손이란 것을 알고 여러 노객에게 소개하며 노기를 풀게하니 노객들은 깜짝 놀라며

“그럼 얼마 전에 타계 하신 정승 심연원(沈連源)공과 한 집안사람이란 말이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디 그뿐입니까? 청성백아들 안효공과 손자 공숙공까지 3대 정승을 하시고 얼마 전에 타계 하신 심연원 정승도 弟氏되는 통원(通源)공과 함께 형제 정승이 아니오니까?”

“이 총각은 심연원 대감의 제씨 되시는 동지돈녕(同知敦寧) 봉원공(逢源公)의 손자입니다.”

하니 좌중의 모든 사람들이 내심으로 크게 놀라는 표정들이었다. 총각의 아버지 심건(沈鍵)공은 대과 급제하고 2년 만에 타계하는 바람에 승무원정자(承文院正字)로 끝났으나 권대감과는 동문수학을 한사람으로 그때부터 이미 나라의 큰 재목감으로 이름이 났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에 좌중에 한제상이 말을 했다.

“돈녕을 지내신 효창(曉窓)公이라면 나도 잘 압니다. 그런데 그 손주가 작년에 진사시(進士試)에 나가 합격하였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러자 또 한사람이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1년이 넘도록 무위도식하고 세월만 보내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벼슬에는 생각이 없는 듯합니다.” 조금은 빈정대는 듯한 어조였다.

이 일들을 눈여겨본 사람이 있었으니 그이가 바로 이날 연회에 참석한 5~6명의 기생 중에 낀 ‘일타홍’ 이란 기녀였다. 일타홍은 나이는 18세로 어리나 용모는 예쁘고 수려한데다가 시문(詩文)과 가무(歌舞)에도 능하지만 그 보다도 더 특별한 것은 상학(相學)이 출중하다는 점이다.

한번 관상을 보면 누구도 따라 올수 없는 이름난 관상가(觀相家)였다.

심총각은 누가 무슨 말을 하던 개의치 않고 좌중을 한번 쭉 살펴보고는 일타홍의 옆에 와서 앉으며

“둘러보니 좌중에서 네가 제일로 미색이로다. 이름이 무엇이냐?”

“일타홍이라 하옵니다.”

“아 장안에 소문이 자자한 그 일타홍 이더냐? 과연 듣던 대로 미색이로다. 여기 술 한 잔 따르거라.”

일타홍은 술을 따르며 심총각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한다. 아무리 뜯어봐도 범상한 상이 아니다. 그와 같이 뛰어난 골상(骨相)을 가지고도 왜 더벅머리 한량(閑良)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연회석에선 아무리 대가 집 후손이라고는 하나 난데없이 더벅머리 한량이 뛰어들어 술 동냥하는 것도 모자라 기생에게 까지 치근대는 행동이 아주 못마땅한 표정 들이다.

일타홍은 짐짓 소피를 보겠다고 나오면서 심총각을 꾹 찔러 따라 나오게 하였다. 밖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노라니 심총각이 나오면서 다짜고짜 손목을 잡고 말하기를

“나는 너한테 첫눈에 반해버렸느니라”고 하며 “지금부터 아예 나하고 너의 집으로 가자!” 하는 것이었다.

일타홍이 지금은 못 간다고 하자

“왜 내가 싫어서 그러느냐?”

“아니옵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어른들을 모시고 있는 지라 자리를 비울 수가 없습니다. 그 대신 연회가 끝나면 도련님 댁을 찾아 갈 것이니 댁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니

“우리 집은 계동이다. 계동골목에 들어서서 심승지 댁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어린아이들도 다 아느니라 틀림없이 찾아오기는 하겠지?”

“그렇지 않아도 도련님을 만나 뵙고 드릴말씀이 있사오니 집에서 가셔서 꼭 기다려 주십시오.”

이번에는 오히려 일타홍이 다짐을 받는 것이었다.

연회가 파하고 일타홍은 가르쳐 준대로 심총각의 집을 찾아갔다.

아주 큰 저택이다. 문고리를 두어 번 두드리니 기다리고 있었는지 심총각이 불이 나게 나와 대문을 열어주며

“아! 네가 왔구나! 많이 기다렸느니라.” 하며 손목을 잡고 안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일타홍은 끄는 대로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 나서 위엄 있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도련님께 잠자리나 하고자 해서 온 것이 아니옵니다. 도련님의 관상을 보면 공부만 잘하시면 크게 되실 분이시며, 더군다나 개국공신 청성백의 후예라니 더욱 더 그러하옵니다. 그러나 도련님은 몰락한 가문을 세울 생각은 아니하시고 벌써부터 부녀자나 희롱하고 다니시니 이 어찌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준엄하게 충고를 하니 심총각은 자신의 처지를 반성이라도 하는 듯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더니

“그러면 나 같은 놈이 이제라도 공부를 하면 무엇이고 될 수 있단 말이더냐?” 일타홍은 말했다.

“남아대장부가 한번 마음먹으면 안 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더구나 도련님은 작년에 진사시에 까지 합격하신 분이 아니시옵니까?” 하니 한참 듣고 있던 심총각은 그래도 일타홍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내가 공부를 하면 너하고는 어찌 되는 것이냐?”

“만약 도련님께서 공부를 결심만 하신다면 소첩은 오늘이라도 기적을 버리고 도련님 댁에 들어와 도련님을 돕기 위해 심부름꾼 노릇이라도 하겠사옵니다.”

심총각은 일타홍이 집에 들어오겠다는 말에 기뻐서 어쩔 줄 모르고 다시 공부하기로 결심을 하였다.

“그러나 소첩이 이 가문에 들어오려면 노마님의 허락이 있어야 하옵니다.”

심총각은 일타홍의 요구대로 그렇게 하기로 하고 어머님을 뵙기 위해 함께 안으로 들어가자고 하였으나 일타홍은 한사코 혼자 가겠다고 해 그렇게 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하여 노마님과 일타홍이 마주하게 된 것이다.

머리가 희끗희끗해 보이는 노마님은 아들의 일로 수심이 가득 차 보였다. 세 살 때 부친을 잃고 극진히 정성을 들여 양육하였건만 장남이란 자가 어찌하여 떠꺼머리 한량이 되었는지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다.

일타홍은 노마님께 깍듯이 인사를 하고 기생의 몸이란 것을 밝혔다.

일타홍이 기생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더니 땅이 꺼질듯이 한숨을 쉬었다.

주색잡기 밤낮이 없는 망나니가 이제는 기생을 집까지 끌어 들였다고 눈물을 흘리시며 탄식하는 것이었다.

일타홍은 묵묵히 앉아 노마님의 마음이 가라앉을 때를 기다렸다가 공손히 말을 이어 갔다.

“소인네는 비록 기녀의 몸이기는 하오나 돈을 바라고 도련님을 따라온 것은 아니옵니다. 만일 소인이 재물을 탐내었다면 어찌 가난한 더벅머리 총각을 따라 왔겠나이까?”

“그렇다면 네가 어쩌자고 우리 아이를 따라서 집에까지 왔느냐?”

일타홍은 여기까지 오게 된 동기를 상세히 설명하였다.

“제가 상학(相學)을 배워 관상을 좀 볼 줄 아옵니다. 도련님의 관상을 보니 열심히 노력만 하신다면 장차 큰 인물이 되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형편으로는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주 난처한 일이 옵니다. 그러나 방탕생활을 잡기 위해서는 우선 공부를 착실히 하셔야 하는데 공부를 다시 하기가 쉽지 않은 즉 어떤 방책으로든 제가 옳은 길로 잘 인도 할 것이 옵니다.

그러자면 노마님의 허락이 있으셔야 하고 허락만 하여 주신다면 소인네는 오늘이라도 기적에서 완전히 몸을 씻고 이 댁에 들어와 도련님을 위하여 모든 정성을 다 바칠 것이옵니다.“

이 말을 들은 노마님은 천하에 몹쓸 망나니를 바로잡겠다니 반가운 말이기는 하나 과연 행동을 바로 잡을 수 있을까 하면서도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하는 생각에

“그렇게만 해준다면 네가 내 집에 들어온다는 것을 어찌 마다하겠느냐. 그러나 우리 집 형편도 그리 넉넉지 못한 처지에 어떻게 견디겠느냐?”

“소첩이 호강하러 오는 것이 아니옵고 도련님 한분 잘 모시고자 오는 것이오니 괘념치 마시옵소서. 다만 마님께 한 가지 부탁 말씀이 있습니다.”

노마님은 아들을 잘되게 인도하겠다는 말에 얼마나 고맙고 대견한지 일타홍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래 무슨 말이든 어서 해 보거라!”

“소인네가 도련님을 모시는데 있어 어떤 방법으로 지도하거나 간섭하지 마시옵고 모든 것을 소인네에게 맡겨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못나서 아들을 저런 꼴로 만들었거늘 무슨 간섭을 하겠느냐. 그저 사람만 만들어주면 될 것이니 부디 두 손 모아 부탁하마.”

하면서 두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시며 부탁하니 일타홍도 또한 눈물이 나와 한동안 서로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노마님의 허락을 받은 일타홍은 심총각이 기다리고 있는 사랑방으로 돌아왔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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