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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관가 탐방기

고향을 떠난 지 420년, 그래도 심문의 뿌레기는 강했다

- 심규선 인터넷종보편집위원장 -

  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간 도공의 후손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도자기 명가인 사쓰마야키(薩摩燒)의 14대 종가 심수관(沈壽官) 씨가 일본인 2001명과 함께 다음 달 한국을 찾는다. 내달 1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한일직능문화교류회에 참석하기 위한 것. 심 씨는 이 대회의 일본 측 실행위원장이다.

한일직능문화교류회는 2002년 월드컵 한일 공동 개최 성공을 위해서는 민간교류와 협력이 중요하다는 뜻에서 올 초 기획됐다. 필자가 동아일보 도쿄특파원으로 있던 2001년 8월에 쓴 기사다. 벌써 18년이나 지났지만 자민당 본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14대 심수관을 처음 만나던 장면은 아직도 기억이 또렷하다. 명함을 드리자 그분은 명함만 뚫어지게 쳐다보며 10여 초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윽고 무네가 귯토 시마스(胸がぎゅっとします)라고 했다. 가슴이 콱 막힙니다라는 뜻이다. 왜 그랬을까. 내 명함에 있는 [沈]이라는 글자 때문이다. 일본으로 끌려간 지 400년이 넘었지만 뿌리에 대한 그리움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내 가슴도 먹먹해졌다.

2월 13일부터 2박 3일간 일가 20명(일부 가족 포함)이 일본 가고시마로 심수관 도요를 방문하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다. 계기는 메이지유신 150주년을 기념해 가고시마 여명관에서 열리는 화려한 사쓰마야키전을 보기위해서였다. 그러나 방문단이 도자기보다는 도자기를 만든 심수관 일가에 대해 더 관심을 가졌던 것은 당연하다. 도착하던 날 저녁, 방문단은 15대 심수관 당주를 초청해 일행이 머무는 가고시마 시내 호텔에서 식사를 함께 했다. 이때 심상정 방문단장은 심수관 일가가 이역만리에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심문의 자긍심을 지키며 존경받는 예술가로 우뚝 선 데 대해 경의를 표했고, 15대 당주는 핏줄이라는 이름으로 잊지 않고 멀리까지 찾아와 관심과 격려를 해주는 데 대해 감사를 표시했다. 15대 당주는 그날 두 가지 사실을 밝혀 방문단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조선에서 끌려온 도공 집안이 많았지만 지금까지 당시의 성(姓)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것은 심가가 유일하다는 것과 아들이 이미 도공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

방문단은 다음 날 오전 가고시마 시내에서 버스로 1시간 이상 가는 히오키시 히가시이치키쵸(日置市東市來町)의 심수관요를 방문했다. 먼저 沈家伝世品收藏庫(역대 심가 박물관)를 둘러보고 1598년 남원에서 끌려와 400년 이상 뿌리와 예술성을 지키면서 일본과 더불어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를 실감했다. 작품 하나하나에 치열하고 눈물겨운 사연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15대 당주는 박물관은 물론이고 작업장과 전시실 등도 친절하게 안내해줬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두 개를 소개하고 싶다.

하나는 여행 둘째 날 심수관 도요를 방문하고 오후에 전시회를 관람할 때의 일이다. 고교생들이 전시회를 관람하고 있었는데 마침 해설자가 12대 심수관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우리는 이 작품을 만든 사람과 같은 집안으로 이 전시회를 보기 위해 20명이 한국에서 왔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못 믿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사실인 것을 알고는 대단하다고 진심으로 감복했다. 옆에 있던 일본인 할머니 2명도 놀란 표정으로 이 학생들은 도쿄대학에도 많이 들어가는 가고시마의 명문고교생들이라면서 우리에게 연신 고맙다고 인사했다. 가고시마 주민들은 이미 심수관가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다른 에피소드는 둘째 날 오후 검은모래 찜질로 유명한 이부스키로 이동해서 저녁을 먹을 때의 일이다. 참가자들이 한마디씩 할 기회가 있었는데 심재각 일가의 따님인 하은 씨 차례가 왔다. 아버지가 늘 뿌레기를 잊지 말라고 했는데, 이번에 이 여행에 참석해보니 심가는 정말로 뿌레기가 깊은 것 같다. 좌중에서 웃음이 빵 터졌다. 뿌리가 아니라 뿌레기라는 사투리가, 그것도 갑자기 젊은 여성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이 의외이자 정겨워서일 것이다.

이번 여행에 대해 참석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배우고 느낀 것이 많다고 했다. 15대 당주가 10월 5일 청송심씨 한마음대회(가칭)에 참석하면 좋겠다거나, 심문의 젊은이들이 심수관 도요를 견학하면 좋은 교육이 될 것 같다는 말도 나왔다.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성공이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닐 것이다. 심수관 일가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뿌리를 송두리째 뽑혀본 적도 없고, 외롭고 무서운 곳에서 목숨 걸고 살아본 적도 없는 여러분은 심문을 위해 그동안 무엇을 해왔으며,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여행은 함께 갔지만 대답은 각자 내놓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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