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조참판공(휘 평)지문

예조참판공 휘 평 묘소
소재지: 김포시 풍무동(당곡) 선영하

묘 표 석


公의 휘(諱)는 평(枰)이오 字는 여기(汝器)이며 靑松沈氏이다. 高祖는 諱 강(鋼)으로 명종국구(明宗國舅)로 靑陵府院君이시고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에 시(諡) 익효공(翼孝公)이시며 曾祖는 휘 제겸(悌謙)으로 수운판관(水運判官)인바 贈左承旨이시고 祖는 휘 관(慣)으로 金浦郡守인바 贈左承旨이시며 考는 휘 정석(廷碩)으로 참봉(參奉)이시고 비(妣)는 海平尹氏로 현감 창수(昌壽)의 따님이시고 영의정 諡 문숙공(文肅公) 승훈(承勳)의 曾孫女이신바 公께서는 次男으로 仁祖 20年 壬午(1642)에 出生하시어 伯父이신 휘 정노(廷老) 장예원사평(掌隸院司評)으로 증 이조참판(吏曹參判)이시고 妣는 坡平尹氏로 孝 贈持平이신 진파(振坡)의 따님인바 무육(無育)으로 入系하시어 숙종(肅宗) 3年 丁巳(1677)에 司馬試에 合格하여 生員이 되고 3年後인 庚申년(1680)에 文科에 及第하시어서 여러 內外職을 거쳐 肅宗 10年 甲子에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과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丙寅에 장령(掌令) 丁卯에 執義·司諫 戊辰에 掌令을 거쳐 地方 수재(守宰)를 轉轉 癸酉에 상주목사(尙州牧師)를 歷任하고 乙亥에 承政院 右承旨 丙子 7月에 강원도관찰사(江原道觀察使)로 出守하였다가 丁丑 3月에 左承旨로부터 6年間 6房 承旨를 두루 거치시고 壬午甲年에 工曹參判으로 在任中 사은부사(謝恩副使)로 연경(燕京)에 다녀오시고 癸未에 승정원도승지(承政院都承旨)와 甲申에 禮曹參判으로 재임중 發病 甲申(1704) 10月 29日에 正寢에서 卒하시니 壽 63이시다. 金浦唐谷의 先塋子坐原에 葬禮되셨다. 初配位는 昌原黃氏로 도정(都正) 세구(世耉)의 따님이시고 參奉 형(泂)의 孫女이시며 判書 의원군(義原君) 居正의 後孫이고 郡守 함양 박지양(朴知讓)의 外孫女이시며 出生年度는 傳함이 없고 丁巳(1677) 3月 25日에 卒하시어 公墓에 합폄(合窆)이시고 1男을 出生하셨다. 後配는 韓山李氏로 生員 흠직(欽稷)의 따님이시고 縣監 덕기(德沂)의 曾孫女이시며 左議政 공희공(恭僖公) 유청(惟淸)의 後孫이시고 僉知 全州 이익립(李益立) 外孫女로 丙申(1656)生이시고 丁未(1727) 10月 15日에 卒하시니 壽 72이시고 公墓에 3位合窆이시고 育 3男이시다. 長男 수준(壽浚)은 남원부사(南原府使)로 羅州朴氏를 娶하여 학() 생원 교(灚)와 3女를 生하고 次男 구준(耉浚)은 東萊鄭氏를 娶하여 無育하고 延安李氏를 再娶하여 성(渻)과 2女를 生하고 3男 후준(厚浚)은 進士로 증이조참의(贈吏曹參議)로 豊壤趙氏를 娶하여 해(澥) 三陟府使로 贈吏曹參判과 유(濰)를 生하고 四男 두준(斗浚)은 生員으로 全州李氏를 娶하여 치() 贈吏曹參判과 1女를 生하여 男 치는 遠寸 出系하고 順興安氏를 再娶하였으나 無育으로 질유(侄濰)를 入系하였다. 曾玄孫은 번연(繁衍)으로 불찬술(不殫述)한다. 噫라 公의 官歷中 地方守宰內譯과 空白期間의 記錄은 王朝實錄에 未登載와 後裔 所藏 記錄이 全無하여 墓表文에 登載하지 못함이 遺憾千萬事며 또한 公의 風庶資禀이 傳함이 없어 實錄에서 발췌(拔萃)한 公의 官歷과 家系만을 遂爲之書하다.
光復後 己卯(1999) 11月   日
族後孫 普光文化硏究院 相弼 謹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