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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암공 휘 지택 묘소 |
沈知縣櫟氏具書幣使子廷熙來諗世采曰櫟蚤孤不肖先人墓門之石尙未克竪敢以是慁執事抑豈有待於今日者歟願賜一言余謹受而卒業盖公世爲名家生當萬曆丁酉之歲旣冠受學於寒岡鄭先生之門又從旅軒張公遊兩公皆期重焉爲人沈靜嚴重寡言與笑裁處事義未嘗少苟居家常戴艸笠晨興整衣冠對案危坐讀經傳諸書務窮指趣間爲手寫擊蒙要訣以自飾厲其所用力者大抵類此然而尤喜誦 二子文殆踰千遍素習右軍八法深臻波畫雖於造次之頃不放一點亦可見其所存矣當冬出游偶値販書者卽解所服新檽以償之婦家號稱饒富婚時服飾頗侈公皆倂斥俾不以
![]() ![]() 行非不如古人才非不如今人志于正道所求者仁限以短造其存則長彼美一丘寔惟公藏有如不信請考我章 玄石 朴世采 撰 14세조 누암공 휘 지택(之澤)묘갈명 지현(知縣)① 심역씨가 글과 폐백을 구비하고 아들 정희(廷熙)를 시켜 세채(世采)에게 보내서 말하였다. 『역이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불초(不肖)가 선인 墓門에 돌을 아직까지 세우지 못하여 감히 이것으로써 근심 하였으니 집사(執事)②를 오늘까지 기다린 것이 아닙니까. 원컨대 한마디 말을 지어 주옵소서.』 나는 삼가 글과 폐백을 받아서 일을 마치기로 했다. 대개 공은 대대로 명가 자손이며 丁酉(一五九七)년에 태어났다. 약관의 나이에 이미 한강 정선생(寒岡鄭先生)③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고 또 여헌(旅軒)④ 장(張)공의 문하에서도 글을 배웠는데 두 분 선생이 모두 기중(期重)⑤했다. 사람됨이 침착하고 엄중했으며 말과 웃음이 적고 일을 의리대로 처리하여 조금도 구차스러움이 없었으며 집에 있을 때는 항상 초립(草笠)⑥을 썼고 새벽에 일어나서 의관을 정돈한 뒤 책상 앞에 꿇어앉아 경전의 제서(諸書)를 읽고 그 뜻을 힘을 다해 연구했으며 틈틈이 손으로 〈격몽요결(擊蒙要訣)〉⑦을 써서 스스로 힘썼는데 그의 하는 일이란 대략 이러한 것이었다. 그러나 더욱 공·맹자의 글 외우기를 좋아해서 자못 千번이 넘었다고 한다. 본래 右軍⑧의 八法⑨을 익혀서 깊이 파획(波턛)⑩에 이르러 비록 잠시 사이라도 한 점을 소홀히 하지 아니했으니 또한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뜻을 볼 수 있었다. 겨울철에 놀러나갔다가 책 파는 사람을 만나서는 새로 지어 입은 저고리를 벗어서 주고 책을 샀다. 처가(妻家)가 부자라는 말을 들었는데 혼인할 때 옷과 장식이 사치스러웠다. 공이 모두 물리쳐서 몸을 더럽히지 못하게 하고 낡은 옷을 입으면서 말하였다. 『나를 백결거사(百結居士)⑪라고 불러주면 족하다.』 하니 이에 사람들이 더욱 감탄했다. 평생 효도하고 공경하여 부모 곁에 출입하여 부지런히 명령을 따르고 봉양을 철저하게 하여 힘을 쓰지 아니함이 없었다. 어머니가 병들어 여러 해를 지냈는데 직접 약과 음식을 마련하고 옷을 벗고 잠자지 아니했다. 상을 당해서는 슬퍼함이 예에 지나쳤으며 하루 죽 몇 모금씩만 마셨다. 장사를 지낸 뒤에도 다만 소사(疏食)⑫만 먹을 뿐 과채(瓜菜)⑬를 섭취하지 아니했으며 심한 병에 걸리지 아니하고는 상복을 벗는 일이 없었다. 집상(執喪)하는 사이에도 문득 상례(喪禮)를 읽었으며 성묘(省墓)하러 가는 길에 큰 비를 만나 번개가 천지를 울리니 일행이 모두 크게 두려워하였다. 『여기서 절이 매우 가까우니 비를 피해서 갑시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니 공이 대답하였다. 『상복을 입은 사람이 어찌 절에 출입하겠습니까.』 공은 끝내 가지 아니했다. 복제를 거의 마칠 즈음에 이어서 외간(外艱)⑭을 당하니 기식(氣息)이 약하여 쇠했으나 반드시 자력으로 집상하여 조금도 빠뜨림이 없었다. 아우가 네 사람 있는데 성심을 다해 우애하고 가르치고 이끄는데 항상 법도가 있었으며 항상 한 곳에 살아서 늘 화락했고 문방구(文房具)와 기용(器用)은 좋은 것은 모두 나누어 주었다. 光海君 때 인륜이 모두 무너지니 공의 나이 매우 어렸으나 자취를 거두어 숨어 지내면서 벼슬을 해서 家業을 일으킬 생각을 하지 아니하고 장인을 따라 東郡으로 갔는데 그 때 동군에서는 향시(鄕試)를 준비하고 있었다. 일을 주관하는 사람이 공의 재주를 아껴서 응시할 것을 권했으나 끝내 듣지 아니했다. 仁祖가 반정하자 아버지의 명에 따라 향시에 합격했으나 곧 상을 당해서 경시(京試)에 응하지 못했으니 그 또한 마음에 주장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甲戌(1634)년 1月 2日에 죽으니 향년 38歲에 불과하였다. 공의 이름은 지택(之澤)이요, 자는 자고(子固)며, 처음 이름은 지환(之煥)이다. 가계는 청송에서 나왔는데 좌의정을 지낸 청성백(靑城伯) 휘 덕부(德符)의 자손이다. 증조부의 이름은 호(鎬)로 진사를 한 뒤 대사헌에 증직되었고 조부의 이름은 종민(宗敏)인데 군수를 지내고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아버지의 이름은 혁( ![]() 부인은 영월 엄씨(寧越嚴氏)로 아버지는 군수를 지내고 참판에 추증된 열(悅)이다. 부인의 성품이 단정하고 정성스럽고 간략하고 고요하여 시부모를 섬기고 군자를 받드는데 부도(婦道)를 다했고 더욱 상제(喪祭)에 정성을 다했다. 공보다 네 살이 적게 태어나서 한 달 먼저 죽었다. 그 해 4月 어느 날 공과 함께 광주(廣州)의 석문리(石門里) 건좌곤향의 언덕에 안장했는데 선대의 묘소를 따른 것이다. 2男1女를 두었는데 맏아들은 지현(知縣)이요, 둘째 아들은 익선(益善)인데 부사이다. 익선은 종숙에게 양자가서 종조부의 뒤를 이었고 딸은 윤당(尹鏜)에게 출가했다. 장남 지현의 아들 정희(廷熙)는 곧 나에게 심부름을 와서 비문을 지어 달라고 한 사람이다. 부사의 아들 정기(廷耆)는 주부요, 정노(廷老)와 정귀(廷龜)는 생원이며, 딸은 현령 이영(李泳)과, 황하민(黃夏民)과, 조태채(趙泰采)와, 홍우서(洪禹瑞)와, 이한필(李漢弼)에게 각각 출가했다. 사위인 윤당(尹鐺)은 자식이 없다. 내가 생각해 보니 공의 할아버지 군수공이 오랫동안 여러 선생의 문하에서 글을 배워 선비의 규범을 실천했고 공에게 이르러서는 저 학문에 뜻을 두고 열심히 노력해서 게으르지 아니했기 때문에 거의 성공의 경지에 도달했으나 단명하여 그것을 시용(施用)⑮하지 못했으니 어찌 불행하다 하지 아니하겠는가. 글로 이어서 글을 지으니 글은 다음과 같다. 행동이 옛 사람과 같지 아니함도 아니고 재주가 요즈음 사람같지 아니함도 아닌데, 뜻은 바른 길에 두고 구하는 것은 인(仁)이었다. 명은 짧았으나 그 나감은 길었도다. 저 아름다운 한 곳은 오직 공이 묻혀 있는 곳이니 만일 믿지 못함이 있으면 내 글 보기를 청하노라. 현석 박세채(朴世采)지음. 주(註) ① 지현(知縣):현을 맡아 다스리는 사람. 현령, 또는 현감의 별칭. ② 집사(執事):어른. 존장. 10여년 이상의 선배를 부르는 존칭. 요즘 일을 맡은 관리인과는 성격이 다름. ③ 한강 정선생(寒岡鄭先生):조선 중기의 유학자. 퇴계 제자인 정구(鄭逑)의 호. ④ 여헌(旅軒):한강의 제자. 장현광(張顯光)의 호. ⑤ 기중(期重):중하게 될 것을 기대함. ⑥ 초립(草笠):대나무로 만든 삿갓이나 갓. ⑦ 격몽요결(擊蒙要訣):책이름. 조선 유학자 율곡 이이(李珥)의 저서.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주역의 뜻을 풀이한 것. ⑧ 우군(右軍):당나라 명필. 왕희지(王羲之)의 벼슬. 비유하여 왕희지. ⑨ 팔법(八法):글씨 쓰는데 꼭 지켜야 할 여덟 가지 법. 영자팔법(永字八法). ⑩ 파획(波畫):글씨를 쓰는데 필력(筆力)의 강약에 의해 획의 굵고 작은 것이 생기는 것. ⑪ 백결거사(百結居士):백결은 백 번 지음. 비유하여 누더기. 누더기를 입은 거사. ⑫ 소사(疏食):소만 가지고 먹는 밥. 반찬 없이 먹는 밥. ⑬ 과채(瓜菜):오이와 채소. ⑭ 외간(外艱):아버지의 상고. ⑮ 시용(施用):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