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공주묘지


高祖母 淑明公主는 孝宗의 둘째 딸이니 公主의 모친은 仁宣王后 張氏이고 외조는 휘(諱)가 유(維)이니 우의정 新豊府院君 贈領議政으로서 시호가 문충(文忠)이다. 庚辰年(1640년:仁祖18년) 정월 25일에 탄생하여 壬辰年(1652년:孝宗3년)에 靑平都尉에게 하가(下嫁)하였다.
어진 덕으로 숙성하여서 시부모에게는 사랑과 공경으로 대하였고 남편에게는 정중함과 유순함으로 대하였으며 사람들에게는 자기를 낮추고 어울려 화합하였으니 집안을 다스리거나 아랫사람들을 거느리는데 엄숙히 법도가 있었다. 癸亥年(1683년:肅宗9년) 도위공의 喪을 당하여서는 슬픔으로 몹시 수척해졌으므로 肅宗께서 매번 친히 임하시어 관대하게 위로하시었다.
己巳年(1689년:肅宗15년) 간신들이 國權을 잡자 仁顯王后께서 폐위되시었다. 公主가 근심스럽고 마음이 아팠으나 일찍이 한마디도 국사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었는데 당시 사람들이 오히려 미워하여 매우 지독하게 헐뜯으니 상감께서는 노하시어 그 두 아들을 귀양보내라 명하시었다.
戊寅年(1698:肅宗24년) 公主가 병이 위독해지자 상감께서는 시신(侍臣)을 기다리지 아니하시고 서둘러 임하시어 병문안을 하시며 친히 약을 받들어 마시게 하시니 公主의 병이 곧 나았다. 상감께서는 그로 말미암아 시를 읊으시어 기쁨을 나타내시었으니 이는 특별히 예우하심이었다. 이듬해 己卯年(1699년:숙종25년) 3월 17일에 세상을 떠나니 상감께서는 몹시 슬퍼하시고 조제(弔祭)와 부의(賻儀)를 후하게 하시었다. 五월에 고양군 석천곡(高陽郡石川谷) 축좌 언덕에 예장하였다. 도위공의 성은 沈이요 휘는 익현(益顯)이다. 맏아들의 휘는 정보(廷輔)이니 벼슬이 右尹이다. 둘째 아들의 휘는 정협(廷協)이니 벼슬이 僉正이다.
아아. 公主가 세상을 떠난지 이미 오래 되었으므로 그의 아름다운 말과 훌륭한 행실을 자세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삼가 엎드려 생각건대 公主는 孝宗께는 딸이 되고 顯宗께는 누이가 되고 肅宗께는 고모가 되니 세상에서 진실로 더 귀하다 할 수 없고 더군다나 세 조정에서의 예우가 보통 경우와 견줄 수 없을 만큼이었거늘 도리어 부귀를 뽐내지 아니하고 溫和함과 恭順함을 스스로 지키며 孝誠과 友愛가 一家에 현저하니 이 어찌 말미암는 바가 없으리오. 先正 臣 宋時烈이 지은 효종릉지(孝宗陵誌)에 이르기를 『여러 公主가 下嫁하여 시부모를 섬길 적에 婦道를 엄격히 지키었으니 이에 王化의 一端을 알 수가 있다.』 하였으니 이것만으로도 숙명공주의 훌륭한 행실이 어디로부터 말미암는지 고증할 수가 있다. 어느 겨를에 子孫들의 사사로운 말을 기다리리오.
崇禎後 세번째 庚戌年(1790년:正祖14년) 9月   日에
玄孫 文永이 삼가 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