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주록 배신열전

沈長世字德祖靑松人靑陽君義謙孫天啓甲子李适反上幸公州長世以儒生從之特拜義禁府都事丁卯又扈駕江都及至丁丑朝廷旣媾和于虜長世傷時悶俗談論激烈遂無意當世然自以懿戚之後不可潔身長往時時出謝恩命嘗爲榮川聞洪宇定鄭瀁姜恰洪錫等四人隱居太白山卽日棄官歸築室于丹坡洞扁其室曰覺今蓋取陶潛之意也與四人結社徜徉時人高其節謂之太白五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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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21年丁巳에 왕명으로 편찬한 丙子절신 추원록이다.
심장세(沈長世)의 字는 덕조(德祖)이고 관향이 청송으로 청양군 義謙의 손자이다. 천계(明:희종의 년호) 仁祖2年 갑자에 이괄(李适)이 반란하여 임금이 공주로 몽진(蒙塵)하실 때 장세가 포의유생(布衣儒生)으로 어가를 따랐다. 수행 중 공훈이 있어 특별히 의금부도사를 배명받았다. 정묘호란 때에도 강화도까지 어가를 호종(扈從)하였다. 서기(1637年) 丁丑에 조정이 이미 오랑캐와 강화함에 이르러 장세가 세상일을 상심(傷心)하고 고민하여 담론이 격렬하였다.
따라서 그때의 세상에 머물 뜻이 없어졌으나 스스로 지척의 후손으로서 깨끗한 처신을 할 수가 없었다. 멀리 떠나갈 생각이 때때로 나왔으나 어명(御命)을 받들어 사은하고 영천(榮川)의 수령으로 있었으나 홍우정, 정양, 강흡, 홍석 등 네 사람이 太白山에 숨어산다는 말을 듣고 바로 그날로 벼슬을 버리고 태백산 단파동(丹坡洞)에 돌아가서 집을 짓고 현판을 각금(覺今)이라 하였으니 대개 도연명의 뜻을 취함이다. 네 사람으로 더불어 뜻을 맺고 거닐었으니 당시의 사람들이 그 절의를 높이어  태백오현이라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