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판관공(휘 욱)묘갈

홍주판관공 휘 욱 묘소
소재지: 고양시 덕양구 원흥동 원흥리 선영하

묘 비 석


12世祖 嘉善大夫 贈吏曹參判 翼社原從功臣 洪州判官 諱 旭 墓碣
公의 휘(諱)는 욱(旭)이요 字는 여명(汝明)으로 청송인(靑松人)이다. 청송심씨(靑松沈氏)는 여조(麗朝)에 나와 조선조(朝鮮朝)에 일어나니 그 始祖가 高麗朝에 위위사승(衛尉寺丞)을 지내신 諱가 홍부(洪孚)이시다. 始祖께서 연(淵)을 낳으니 벼슬이 합문지후(閤門祗侯)이고 연(淵)께서 아들을 낳으시니 諱가 龍으로 벼슬이 전리정랑(典理正郞)에 증문하시중(贈門下侍中)과 청화부원군(靑華府院君)이시다.
다음은 4世祖 諱가 덕부(德符)로 字는 득지(得之)요 號가 허강(虛江)으로 벽상삼한삼중대광문하시중(壁上三韓三重大匡門下侍中) 청성군충의백(靑城郡忠義伯)이요 本朝에 들어 청성백(靑城伯)에 封해지고 판문하영삼사(判門下領三司)를 거쳐 의정부좌정승(議政府左政丞)에 오르고 시호(諡號)가 정안(定安)이시다.
5世祖 諱 온(溫)을 낳으니 溫께서는 7子中 5남으로 後配位 인천문(仁川門)씨 所生이다. 어려서부터 영민(英敏)하여 12세에 진사시(進士試)에 及第하고 따님인 소헌왕후(昭憲王后)가 왕비(王妃)가 되니 국구(國舅)가 되셨고 의정부영의정(議政府領議政)을 제수(除授)받고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에 봉군(封君)되시었다. 일이 생겨 무술옥사(戊戌獄事)가 일어나매 끝내 피하지 못하고 돌아가시니 嗚呼라!! 門中의 존망(存亡)이 풍전등화(風前燈火)라. 文宗이 즉위(卽位)하여 신원부작(伸寃復爵)하고 시호(諡號)를 나리시니 안효(安孝)이시다.
6世祖 諱 澮를 낳으시니 청송부원군(靑松府院君)이시며 諡號가 공숙(恭肅)이시다. 익대(翊戴)와 좌리공신(佐理功臣)이 녹훈(錄勳)되고 영상(領相)에 이르니 삼연상(三連相)의 벌열(閥閱)이 되었다. 7世祖 諱 원(湲)을 낳으니 내자사판관(內資寺判官)으로 世祖12年丁巳(1467年)에 병난(兵亂)으로 함길도(咸吉道)에서 순절(殉節)하시니 享年이 겨우 31歲시다. 후에 증좌찬성(贈左贊成)이시며 순충적덕보조공신(純忠積德補祚功臣)이 되셨다. 8世祖 諱 順門께서는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인데 燕山10年甲子(1504年)에 연산군(燕山君)의 황난(荒亂)으로 피화(被禍)되어 몰(歿)하니 享年이 40이시다. 후에 의정부영의정(議政府領議政)에 증직(贈職)되셨다. 曾祖 諱 봉원(逢源)께서는 호가 효창(曉窓)이며 字는 희용(希容)으로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이시고 祖 諱 건(鍵)께서는 호가 경성헌(警省軒)으로 일찍이 進士가 되고 戊申別試에서 文科에 及第하여 젊어서 중망(衆望)이 있었으나 벼슬이 承文院正字에 이르러 일로 호남(湖南)에 갔다가 객관(客館)에서 요절(夭折)하여 享年이 겨우 32이시니 애통하도다. 후에 아드님 일송공(一松公)의 貴로 증직(贈職)이 의정부영의정(議政府領議政)이시다. 考의 諱는 창수(昌壽)요 字는 형로(亨老)요 號가 성암(省菴)이니 벼슬이 군기사첨정(軍器寺僉正)으로 익사원종공신(翼社原從功臣)에 녹훈(錄勳)되고 증이조참판(贈吏曹參判)이시다. 어머니 증정부인(贈貞夫人)께서는 무송윤씨(茂松尹氏)로 贈參判 지서(贈參判 之瑞)의 따님이요 四男을 生하니 公은 그 1子이다. 公은 宣祖2年己巳(1569年)에 出生하였는데 어릴 적부터 몸가짐이 단정(端正)하고 천품(天稟)이 엄중(嚴重)하여 들어와서는 孝하고 나가서는 공경(恭敬)하고 한시도 글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伯父 一松公께서는 公이 매사(每事)에 誠實하여 남달리 총애(寵愛)하고 활쏘기와 병술(兵術)을 가르치매 드디어 宣祖35年壬寅(1602)에 武科에 及第하고 홍주판관(洪州判官)을 지냈다. 나아가 오위도총부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에 오르고 익사원종공신(翼社原從功臣)에 녹훈(錄勳)되셨다. 公이 평양조씨(平壤趙氏) 광림(光琳)의 딸에게 장가들어 2女를 生하고 후취배위(後娶配位) 安東金氏 奉事 昕의 딸에게 장가들어 2男을 生하니 유석(儒碩)과 유준(儒俊)이다. 유석(儒碩)께서는 통덕낭(通德郎)이시며 1男5女를 生하니 1男은 영(楹)이요 증병조참판(贈兵曹參判) 兼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 오위도총부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에 오르고 4男1女를 두셨으며 다음은 유준(儒俊)인데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증이조참판(贈吏曹參判)으로 2男3女를 낳으셨다. 따님은 강능금집(江陵金)에 次女는 郡守 상주황전(尙州黃琠)에게 各各 출가(出嫁)하였다. 公에게는 세분의 아우님이 계셨으니 첫째가 돈(暾)으로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이요 익사원종공신(翼社原從功臣)이고 둘째는 창(昶)으로 온양군수(溫陽郡守) 증이조참판(贈吏曹參判)으로 伯父인 의정부좌의정(議政府左議政) 諱 희수(喜壽) 一松公에게 出系하셨고 셋째는 훤(暄)으로 흡곡현감(歙谷縣監)을 지내셨고 익사원종공신(翼社原從功臣)이시다. 이에 後孫들은 玄祖를 숭앙(崇仰)하고 받드는데 항상 예법(禮法)을 다하였고 또 독실(篤實)한 유가(儒家)의 後孫들로 품행(禀行)을 성실(誠實)히 하고 끊임없이 학문을 연마하며 家業을 충실(忠實)히 이어왔다. 公이 가신지 350餘年! 그간 墓前이 허소(虛疎)하여 민망하옵더니 이제야 묘갈(墓碣)을 입수(立竪)하게 되어 잠영세족(簪纓世族)으로의 체면(體面)을 세우는도다.

甲申(2004)年 月 日
13代孫  서울 容圭  謹撰
靑松沈氏 曉窓公派宗會 謹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