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중수기


坡山之陽有我
先祖恭肅公祠堂祠堂之建盖舊矣
公以
文宗元舅位躋上相策佐理勳施以不祧之典其德行事業載在 國史至今赫赫然照人耳目 祠版舊在宗孫家廟而每患其隘陋粤在
肅廟甲午八代孫判書檀與京外諸宗議鳩財力營立別廟新其址而廓其宇以爲妥 靈之所迄于今百有三年丹雘磨泐杗桷朽頹余用是悚惕博議于京中諸宗合力經始仍舊修改一新肅淸八月十二日奉安 祠版此吾諸宗之功也諸宗請余爲之記余不敢辭記其事而示不忘焉至若朔望拜謁掃灑修理宗孫之誠也百世一心嗣而葺之諸宗之誠也惟我同派本支敬之勉之
上之十五年 戊寅 八月  日
十六代孫 正憲大夫禮曹判書 侍講院左賓客 舜澤 謹記

공숙공사당중수기(번역문)
파산(坡山)의 남쪽에 우리 선조(先祖) 공숙공의 사당이 있으니 사당을 지은 지 오래이다.
공은문종대왕의 외숙(外叔)으로써 벼슬이 영의정이었고 좌리공신(佐理功臣)에 책록(策錄)되었으며 부조(不祧)의 은전(恩典)을 받아 그 덕행(德行)과 사업(事業)이 국사(國史)에 실려 지금까지 환하게 사람에게 알려졌다. 사판(祠版)이 예전에는 종손의 가묘(家廟)에 있어서 늘 그 좁은 것을 근심하였다.
숙종갑오 숙종40년 1714년에 8대손 판서 단(檀)이 서울과 지방의 여러 일가들과 상의(相議)하여 재력(財力)을 모아 별묘(別廟)를 세워 그 터를 새롭게 하고 그 사우(祠宇)를 확장하여 신주모시는 곳으로 삼은지 지금까지 백삼년이 되었더니 단청한 것이 갈리어 없어지고 들보와 석가래가 썩어서 무너졌으니 내가 이것으로써 두렵고 슬프게 생각하여 널리 서울의 일가들과 상의하여 힘을 합하고 집을 짓기 시작하여 옛 모양으로 말끔히 고쳐 짓고 8월12일에 신주를 봉안(奉安)하였으니 이는 우리 여러 일가들의 공이다. 여러 일가들이 나에게 기(記)를 지으라고 하니 감히 사양하지 못하고 그 일을 기록하여 잊지 않게 한다. 초하루 보름에 참배하고 청소하며 물뿌리고 수리(修理)한 것은 종손의 정성이며 백세(百世)에 한마음으로 이어서 수선(修繕)한 것은 여러 일가의 정성이니 오직 우리 동파(同派)의 본손 지손은 공경하고 힘쓸지어다.
지금 임금의 15년 무인 고종15년 1878년 8월  일
정헌대부예조판서 시강원좌빈객 순택이 삼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