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조 이조정랑공 휘 지포 묘갈문

公系出靑松考諱卿上護軍祖諱晟奉翊大夫典理判書曾祖諱洪孚文林郞衛尉寺丞公始居咸州生牧使春雨春雨生生員道赫道赫生進士重山重山生參議有若有若生四子聖孫聖伯聖弼永孫而四子不能盡記公墓在咸興府退潮社堯洞卯坐原詳載族譜而再經兵亂久絶香火 乾隆(一七四三)八年諸孫合力改碣配韓氏雖同兆古碣磨洗姓貫未明休于前面十一代孫昌龜謹銘曰
忠以事君官職淸顯孝以奉先雲仍蕃衍其量河海其器瑚璉追思餘蔭銘石哀撰
4세조 이조정랑공 휘 지포(之浦) 묘갈문
공의 계통은 청송에서 나왔고 아버지의 휘는 경(卿)이니 상호군(上護軍)이요 할아버지의 휘는 성(晟)이니 봉익대부(奉翊大夫) 전리판서(典理判書)이며 증조의 휘는 洪孚니 문림랑(文林郞) 위위시승(衛尉寺丞)이다. 공이 처음 咸州에 살며 목사(牧使) 춘우(春雨)를 낳았고 춘우가 생원 도혁(道赫)을 낳았으며 도혁이 진사 중산(重山)을 낳았고 중산이 참의 有若을 낳았으며 유약이 네아들 성손(聖孫) 성백(聖伯) 성필(聖弼) 永孫을 낳았으나 네아들의 벼슬은 다 기록할 수 없다. 공의 묘소는 함흥부퇴조사요동묘좌원(咸興府退潮社堯洞卯坐原)에 있는 것이 족보에 자세히 기재되었으나 두 번 병난(兵亂)을 겪어 제사를 오래도록 지내지 못하였더니 건융(乾隆)八년 1743년에 모든 자손들이 힘을 합하여 묘갈을 고쳐 세웠다. 배위는 韓氏이니 비록 한 무덤이나 옛 묘갈이 비바람에 갈리고 씻기어 姓과 貫鄕이 前面에 잘 보이지 않아서 11대손 창구(昌龜)가 墓碣銘을 지었으니 명은 다음과 같다.
충성으로써 임금을 섬겼으니 관직이 높고 좋은 지위였고 효성으로써 조상을 받들었으니 자손이 번창하였도다. 그 度量은 河海와 같았고 그 그릇은 구슬과 같았도다. 지난 은덕을 생각하여 비석에 새기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