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허정

함허정(전남유형문화재 제160호)
소재지: 전남 곡성군 입면 제월리


함허정 출입문


함허정


涵虛亭在縣東二十五里涒湖之上前臨大江平沙漠漠後負高山立石矗矗亭下有石狀如龜大如牛露出水面可坐而垂釣故號龜巖釣臺又有石在臺傍石面如削長廣三尺許倒書龍字字大過掌號龍巖諺稱天作神篆沈霽湖光亨始建亭扁曰涵虛以爲藏修之所孝行禮學著于湖嶺本道伯思齋金正國狀 聞有曰孝襲曾氏學遵晦翁云云再從兄左叅贊鈍庵光彦以本道伯到亭見江山之勝仍言曰古詩所謂三公不換此江山此之謂也六世孫通德郞柱磶重修之八世孫昌鎭重修之十二世孫雲澤重修之霽湖亭遺集軼於壬辰之兵燹而四度重修後九世孫汞橋進士斗永作詩懸楣本縣監崔瑗作序申紫霞緯書篆進士斗永詩曰

함허정(번역문)
함허정(涵虛亭)은 옛 옥과현(玉果縣) 동쪽으로 25里지점 군호(涒湖)의 위에 위치하고 있다.
앞에는 큰 강물이 출렁거리고 백사장(白沙場)은 아득하며 뒤로는 높은 산을 등졌는데 입석(立石)이 우뚝 솟아 있고 정자(亭子)아래 황소만한 암석(巖石)은 그 형상이 마치 거북과 같고 물위로 노출(露出)되어 있다.
그 위에 앉아 가히 낚시줄을 드리울만 한 까닭에 이름하여 구암조대(龜巖釣臺)라 불리운다.
또한 돌 하나가 조대(釣臺)곁에 있는데 석면(石面)이 마치 깎은것 같으며 장광(長廣)이 三尺남짓 하고, 용자(龍字)가 거꾸로 쓰여 있는데 글자의 크기는 손바닥 보다는 더 크며 이름을 용암(龍巖)이라 부르고 귀신이 썼다는 전설(傳說)도 있다.
심제호공(沈霽湖公) 광형(光亨)이 비로소 이곳에 정자(亭子)를 세워 이름을 함허정(涵虛亭)이라 부르고 학문(學問)을 연구하는 곳으로 삼아 왔다. 그의 효행(孝行)과 예학(禮學)이 嶺·湖南에 알려졌으므로 본도백(本道伯)인 사재(思齋) 김정국(金正國)이 조정에 올린 장계(狀啓)에 「孝道는 曾子를 承襲하였고 學問은 주자(朱子)를 따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제호공 재종형(霽湖公 再從兄) 좌참찬(左叅贊) 둔암(鈍庵) 광언(光彦)이 본도백(本道伯)으로 부임(赴任)한 뒤에 이 정자(亭子)에 이르러 강산(江山)의 승경(勝景)을 바라보고 말씀하시기를 「古詩에 三公(영상, 좌상, 우상)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구절(句節)이 있는데 아마 이 강산(江山)을 가리켜 읊은 것 같다」고 하였다.
이 정자는 公의 6世孫인 통덕랑(通德郞:正五品) 주석(柱磶)에 의하여 중수(重修)되었고, 8世孫인 창진(昌鎭)과 12世孫인 운택(雲澤)에 의해 중수(重修)가 계속 되었다.
제호정(霽湖亭)의 유집(遺集)은 임진왜란(壬辰倭亂)으로 인하여 잃어버렸지만 정자는 오늘날 네차례에 걸쳐 중수(重修)되었고, 九世孫인 홍교진사(汞橋進士) 두영(斗永)이 詩를 지어 현판(懸板)하였고 본 고을 현감(縣監) 최원(崔瑗)이 서문(序文)을 지었으며 자하(紫霞) 신위(申緯)가 전자(篆字)를 썼다. 진사(進士) 두영(斗永)의 시구(詩句)는 다음과 같다.

  야광천청고목수(野曠天晴古木愁) 넓은 들 갠 하늘 고목(古木)은 시름하듯
오가구세일정류(吾家九世一亭留) 우리 집 九世祖 정자(亭子)가 여기 있네
장강중굴룡암산(長江中屈龍巖山) 굽이친 장강(長江)에 龍바위 솟았고
대계서허서석부(大界西虛瑞石浮) 툭 트인 서쪽에는 서석산(瑞石山) 떠 있구나
촌로투간호원주(村老投竿呼遠酒) 낚시하는 늙은이 술 사오라 소리치고
농인영객재귀주(農人迎客載歸舟) 농부는 손님맞아 배에 태워 돌아오네
약위여차천회구(若爲如此千回構) 이번같이 천번을 손질한다면
류수고산공만추(流水高山共萬秋) 류수고산(流水高山)과 만년(萬年)을 함께하리

글씨는 이삼만(李三晩)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