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동신 금관조복

심동신금관조복 조선 후기(중요민속자료 제2호)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민속박물관 소장


심동신(沈東臣)
1824(순조 24)~?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문(雯)의 아들이다. 홍명주(洪命周)의 외손이다.
1850년(철종 1) 경과증광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관직에 올랐다.
1863년 사헌부장령이 되었으며, 1871년(고종 8) 성균관대사성의 직에 올랐다.
1876년 이조참의가 되었으며, 이듬해 승정원의 좌승지를 지냈다.
1878년 전라좌도암행어사로 제수되어 전라좌도 지방수령들의 시정을 규찰하여 왕에게 보고하기도 하였다.
1879년에는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개항된 부산항에 인접한 동래부사로 임명되었으며, 1880년 조선과의 통상을 맺기 위하여 내항한 미국함대에 관한 동정을 일본을 통하여 연락받아 조정에 보고하는 일을 맡아 처리하기도 하였다.
1882년 예방승지를 지냈으며, 같은해 7월 황해도관찰사에 제수되었다.
황해도관찰사로 재임시에는 청나라와 연접한 대청도(大靑島)의 설진문제, 청나라 상인들의 무단 항해문제 등을 조정에 보고하여 처리하였으며, 자연재해에 의하여 피해를 입은 황해도상황을 상세히 조정에 보고하고 그 진휼(賑恤)에 진력하기도 하였다.
1885년 의금부사로 재임하면서 임오군란 당시 청나라로 잡혀간 대원군의 송환문제를 김홍집(金弘集)·심순택(沈舜澤)·심이택(沈履澤)·김병시(金炳始) 등과 상의하여 처리하였다.
1888년 사헌부대사헌이 되었다.

 

朴 孟 洙


심동신금관조복(沈東臣金冠朝服)
조선 후기의 문신 심동신이 입던 금관조복. 중요민속자료 제2호. 단국대학교석주선기념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심동신은 순조 24년(1824)에 태어나 참판을 지낸 사람으로, 참판 당시에 입던 유품인 금관·적초의·청초의·훈상·후수·패옥·서대·홀 등 일습을 남기고 있다. 금관은 오량관(五梁冠)이며 목잠(木簪)으로 고정시키게 되어 있다.
적초의는 홍색 9족항라(九足亢羅)로 만들어진 홑옷인데, 깃은 직령(直領)에 넓은 동정이 달리고 소매가 넓고 양 옆이 트였으며, 깃 도련 소매 끝에는 흑선이 한치 다섯푼의 너비로 가선되었으며 사이에는 백선이 가늘게 끼워져 있다.
청초의는 적초의 바로 안에 입는 것으로 중단(中單)이라고도 하는데 청색명주로 된 홑옷이다. 직령으로 된 깃에 동정이 있고 소맷부리·도련·좌우의 터진 부분 등에 흑선이 가선되어 있다.
훈상은 적초의와 같이 9족항라로 되어 있는데 전체를 잔주름으로 처리하였으며, 전 三폭 후 四폭의 양식대로 전면이 후면보다 좁게 되어 있다.
후수는 대대(大帶)와 함께 달려 있는데 홍색 전(氈)에 청·황·백의 三색으로 운학을 수놓았다. 상부 양쪽에는 금환이 한쌍 달려 있었는데 그 중 1개는 유실되어 자국만 남아 있다. 끝에는 청색의 망수(網綬)가 달려 있다.
패옥은 번청옥(燔靑玉)이며 청색 운문사로 된 주머니 속에 양호한 상태로 보관되어 있다. 서대는 물소뿔로 만들어지고 안은 모초(毛쿑)로 되어 있고 홀은 상아로 만들어졌다.
이 금관조복은 한말의 유물이지만 부속품까지 양호한 상태로 보관되어 있어 복식사적 가치가 많은 유물이다.
《참고문헌》 文化財大觀-重要民俗資料篇下-(文化財管理局, 1986). 〈石宙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