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성재

정안공(휘 덕부德符) 재실
소재지: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아미리


靑城齋記(청성재기)
 高麗(고려)의 國運(국운)이 衰(쇠)하여 國家(국가)의 存亡(존망)이 危機(위기)에 處(처)하자 뜻있는 重臣(중신)들이 救國(구국)의 決斷(결단)을 하여 朝鮮建國(조선건국)의 기틀을 마련하니 歷史(역사)의 새 章(장)이 열리게 되었다. 麗末鮮初(여말선초) 李太祖(이태조)와 뜻을 함께한 이들은 個人(개인)의 목숨은 물론 家門(가문)의 存廢(존폐)가 달린 重大(중대)한 決斷(결단)을 하였으니 곧 風前燈火(풍전등화) 같은 祖國(조국)을 爲(위)함이었다. 이때 文武(문무)를 兼全(겸전)하고 西京都元帥(서경도원수)와 門下侍中(문하시중)을 歷任(역임)하고 威化島回軍(위화도회군)에 同參(동참)하여 朝鮮建國(조선건국)에 主導的(주도적) 役割(역할)을 했던 靑城伯(청성백) 定安公(정안공)(諱휘 德符덕부)께서는 都邑漢陽(도읍한양)의 造成都監(조성도감)을 맡아 社稷壇(사직단) 宗廟(종묘) 宮闕(궁궐)의 新築業務(신축업무)를 成功的(성공적)으로 推進(추진)하였다.
 公(공)은 一生(일생)동안 淸節(청절)로 스스로를 닦았으며, 公職(공직)을 遂行(수행)함에 티끌만한 것이라도 그 義(의)가 아니면 取(취)함이 없었고, 그 禮(예)가 아니면 行(행)함이 없었다.
 定宗朝(정종조)에는 左政丞(좌정승)을 맡아 一人之下 萬人之上(일인지하 만인지상)의 要職(요직)에 있으면서도 窮乏(궁핍)한 百姓(백성)들을 生覺(생각)하여 거친 조(粟)밥을 드셨으니, 百姓(백성)들이 모두 感化(감화)하여 어질다는 稱頌(칭송)이 널리 퍼졌다.
 벼슬이 正一品(정일품)에까지 올랐으나 더욱 삼가고, 險難(험난)하다고 그 節(절)을 잃지 않았으며, 名譽(명예)를 求(구)하는 일에 그 뜻을 動(동)하지 아니하였고, 祖國(조국)과 百姓(백성)을 섬기는 心法(심법)에 服從(복종)하여 敬(경)을 主(주)로 삼아 存心(존심)하였고, 致知(치지)로 事物(사물)의 眞理(진리)를 窮究(궁구)하였으며 精誠(정성)으로 修身(수신)의 銘(명)을 삼고, 明德(명덕)으로 修養(수양)의 根本(근본)을 삼아 後孫(후손)들의 敎訓(교훈)으로 삼았다.
 公(공)의 厚德(후덕)한 德望(덕망)과 治世(치세)에 힘입어 十三相臣(13상신)과 三王后(3왕후) 四駙馬(4부마)를 비롯하여 數(수)많은 後孫(후손)들이 六曹(육조)와 地方官(지방관)의 要職(요직)에 올랐고, 世人(세인)들이 靑松沈氏(청송심씨)는 三韓甲族(삼한갑족)이라 하였으니 首陽山(수양산) 그늘이 江東八十里(강동팔십리)라더니 그 蔭德(음덕)이 百代(백대)에 미침이로다.
 그러나 사람은 古今(고금)이 있고 萬物(만물)은 盛衰(성쇠)가 있으니 公(공)이 世上(세상)을 떠난 후 壹千四百十八年(1418년)에는 戊戌獄事(무술옥사)가 발생하여 桑田碧海(상전벽해)의 變化(변화)가 있었으니 世上(세상)의 道理(도리)는 한결같이 變(변)하기만 하고 사람사는 일은 날로 急迫(급박)해졌다.
 大宗會(대종회)가 創立(창립)되고 先代墓所(선대묘소)의 淨化事業(정화사업)을 連次的(연차적)으로 實施(실시)하였으나, 公(공)의 墓所(묘소)에는 미쳐 齋室(재실)을 마련치 못하여 不孝莫甚(불효막심)한 心情(심정)을 抑制(억제)할 길이 없었다. 이에 大宗會대종회(會長회장 甲輔갑보)에서는 宗議(종의)를 거쳐 二千十五年 九月(2015년 9월) 齋室建立(재실건립)에 着工(착공)하였으며 各(각) 支派宗會(지파종회)와 全國 一家(전국 일가)들이 誠意(성의)껏 誠金(성금)을 모아 總 壹十三億 三千餘萬원(총 13억3천여만원)의 豫算(예산)을 投入(투입)해 二千十七年 十一月(2017년 11월)에 完工(완공)하니, 晩時之歎(만시지탄)의 感(감)이 있으나 이제야 悚懼(송구)함을 免(면)하게 되었고, 齋號(재호/재실이름)와 門號(문호/대문이름)를 靑城(청성)이라 함은 公(공)의 爵位(작위)를 따랐음이다.
 靑城齋(청성재)를 竣工(준공)하고 미처 記文(기문)을 揭載(게재)치 못했음을 아쉽게 生覺(생각)한 大宗會 相祚 會長(대종회 상조 회장)과 相億 總務理事(상억 총무이사)가 不肖(불초)에게 記文(기문)을 請(청)하니, 淺學非才(천학비재)에 不文(불문)으로 堪當(감당)할 수 없는 일이나 先祖(선조)의 일이라 敢(감)히 辭讓(사양)치 못했다.
 詩經(시경)에 이르기를, 孝(효)를 생각하여 孝(효)에 法(법)을 삼는다 하니 옛날 聖王(성왕)이 祭祀六禮(제사육례)를 制定(제정)하여 人間(인간)에 追遠報本(추원보본)의 道(도)를 알게 함은 祖孫(조손)의 一氣流通(일기유통)한 情神(정신)이니 그 精誠(정성)이 至極(지극)하면 그 祖先(조선)의 靈(영)이 降臨(강림)한다고 했다. 이에 어질고 孝誠(효성)이 至極(지극)한 後孫(후손)은 先祖(선조)를 永遠(영원)히 思慕(사모)하며 先塋近地(선영근지)에 齋閣(재각)을 建立(건립)하여 追慕(추모)하는 것은 人間(인간)의 基本道理(기본도리)라 하겠다.
 嗚呼(오호)라 人道(인도)는 孝悌(효제)보다 重要(중요)함이 없다. 孝悌(효제)가 至極(지극)하면 神明(신명)도 感應(감응)하나니 祖先(조선)과 子孫(자손)은 비록 百世之遠(백세지원)이라도 氣脈(기맥)이 一身(일신/한몸)같이 相通(상통)한다. 祭祀(제사)에는 神(신)이 있는 것 같이함이 孔子(공자)의 丁寜(정녕/올바른)하신 垂訓(수훈/가르침)이요 追遠(추원)에 至誠(지성)함은 曾子(증자)의 歸厚(귀후)한 德(덕)을 말씀함이라. 우리 靑松沈氏(청송심씨)는 代代(대대)로 先祖(선조)를 섬기는 일에 精誠(정성)을 다하여 追遠篤慕(추원독모/독실하게 추모)하면 이것이 先祖(선조)님이 期望(기망)한 바이니 우리 後孫(후손)들은 追遠尊奉(추원존봉/영원토록 추모하고 받들어 모심)을 이 밖에 또 어디서 求(구)하리오. 삼가 記文(기문)을 짓는다.

西紀 二千二十四(甲辰갑진)年 三月(서기 2024년 3월)
靑松沈氏大宗會 副會長, 成均館 顧問 東燮 謹撰
(청송심씨대종회 부회장, 성균관 고문 동섭 근찬/삼가 짓고)
靑松沈氏大宗會 理事 前都正公派宗會長 愚慶 謹書
(청송심씨대종회 이사 전 도정공파종회장 우경 근서/삼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