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出生)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及第)하다.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에
제수(除授)되다.
수원부판관(水原府判官)에 승진(陞進)되다.
정홍익(鄭弘翼)과
함께 무고(誣告)를 받은 성혼(成渾)을 변호(辯護)하다가
옹진현령(甕津縣令)으로 좌천(左遷)되었다.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에
제수(除授)되다. 예조정랑(禮曹正郞)에 승진(陞進)되다.
세자시강원문학(世子侍講院文學)을
겸(兼)하다.
경기도암행어사(京畿道暗行御史)로
나가다.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이
되어 직언(直言)하다가 면직(免職)되다.
은계도찰방(銀溪道察訪)으로
복직(復職)되다. 세자시강원보덕(世子侍講院輔德)에
승진(陞進)되다.
군자감정(軍資監正)에
승진(陞進)되다. 인목대비폐모론(仁穆大妃廢母論)이
일어나자 사직(辭職)하다.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재등용(再登用)되어 병조참지(兵曹參知)가 되다.
접반사(接伴使)가
되다.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승진(陞進)되다. 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로
나가다.
승정원도승지(承政院都承旨)에
전임(轉任)되다. 형조판서(刑曹判書)에 승진(陞進)되다.
예조판서(禮曹判書)로 전임(轉任)되다.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王을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호종(扈從)하고
화친(和親)의 조건(條件)으로 되는 볼모로 왕족(王族)인
릉봉군(綾峯君)을 王의 동생으로 자신(自身)을 대신(大臣)으로
가장(假裝)하고 회담(會談)에 참가(參加)했으나 발각(發覺)되어
실패(失敗)하고 탄핵(彈劾)을 받아 파직(罷職)되다.
신원복작(伸寃復爵)되다.
9月
28日 卒하니 壽가 76이요, 시호(諡號)를 효간(孝簡)이라
내렸고 墓는 인천시(仁川市) 서구(西區) 공촌동(公村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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