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공 휘 현 자 사화 시 충렬(忠烈公 諱 字 士和 諡 忠烈)

                                  

 年度     歲   王                     年

行       蹟

1568(  1세)선조(宣祖)                 1년

 

 

1636(67세)인조(仁祖)                 14년

1637(68세)                                 15년

 

 

 

출생(出生)

후릉참봉(厚陵參奉)을 거쳐 여러 군현(郡縣)의 수령(守令)을 지내다.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에 임명(任命)되다.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종사(宗社)를 따라 강화(江華)에 피란(避亂)하다.

가묘(家廟)의 위패(位牌)를 땅에 묻고 국난(國難)의 비운(悲運)을 통탄(痛歎)하는 유소(遺疏)를 쓰고 1月 23日 자결(自決)하니 향년(享年) 68이요, 금천신림(衿川新林)에 장사지냈다. 시호(諡號)를 충렬(忠烈)이라 내렸으며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追贈)되었고 강화(江華) 충렬사(忠烈祠)에 배향(配享)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