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부

〈관안(官案)〉 부사(府使)
심순도(沈順道):통정(通政)이었고 중종정묘오월(中宗丁卯5月)에 래임(來任)하여 기사오월(己巳5月)에 모상(母喪)으로 사임(辭任)하였다.
심봉휘(沈鳳輝):통훈(通訓)이었고 영조병오(英祖丙午)에 래임(來任)하여 무신정월(戊申正月)에 사임(辭任)하였다.
심 관(沈 鑧):통훈(通訓)이었고 갑오칠월(甲午7月)에 승지(承旨)로써 래임(來任)하여 을미십이월(乙未12月)에 사임(辭任)하였다.
심능식(沈能栻):통훈(通訓)이었고 무인삼월(戊寅3月)에 지평(持平)으로 래임(來任)하여 경진오월(庚辰5月)에 사임(辭任)하였다.
심락정(沈樂正):통훈(通訓)이었고 무진삼월(戊辰3月)에 인천부사(仁川府使)로써 래임(來任)하여 기사구월(己巳9月)에 관(官)에서 졸(卒)하였다.
심의식(沈宜植):군주사(郡主事)로써 정미삼월(丁未3月) 군수서리(郡守署理)에 임명(任命)되었으며 동년사월(同年四月) 다시 서리(署理)로 임명(任命)되었다가 同年 12月 해임(解任)하다.
심두한(沈斗漢):갑인(甲寅)에 래임(來任)하여 무오(戊午)에 사임(辭任)하였다.
〈문과(文科)〉
심  손(沈  遜)
〈사마(司馬)〉
심  청(沈  淸)
〈무과(武科)〉
심택용(沈澤龍)
심유택(沈有澤):의록(宜祿)의 子로 훈련부정(訓練副正)이었다.
〈사환(仕宦)〉
심태산(沈太山):천윤(天潤)의 손(孫)으로 세종조(世宗朝)에 부사과(副司果)였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학문(學問)에 힘썼고 문예(文藝)가 일찍 성취(成就)되었으며 가슴에 깊이 품은 회포로 산수(山水)에 노니는 것을 좋아하여 처음으로 산청(山淸)으로부터 청송(靑松)에 돌아와 살았다.
심응락(沈應洛):청(淸)의 子로 옥과훈도(玉果訓導)였고 자질(資質)이 뛰어나고 문학(文學)이 일찍 성취(成就)되었으며 임진왜란(壬辰倭亂)에 아버지를 따라 전쟁중(戰爭中)에서 도산(島山)의 변(變)을 만나 시신(屍身)을 거두어 반장(返葬)하였다.
심  당(沈  鐺):청(淸)의 손(孫)으로 인조조(仁祖朝)에 성현찰방(省峴察訪)이었고 충효근검(忠孝勤儉)을 후손(後孫)에 전(傳)해 주었다.
심충달(沈忠達):효(孝)의 오대손(五代孫)으로 유행(儒行)으로써 연일훈도(延日訓導)에 임명(任命)되었고 만년(晩年)에 송재(松齋)를 지어 후학(後學)을 교도(敎導)하였다.
심 흠(沈 欽):청(淸)의 손(孫)으로 충의위(忠義衛)였고 근본에 힘쓰는 것을 실천(實踐)하여 스스로 일가(一家)의 규모(規模)를 이루었다.
심종원(沈宗源):孝의 육세손(六世孫)으로 성현찰방(省峴察訪)이었고 후학(後學)을 교도(敎導)하여 향당(鄕黨)의 추중(推重)을 받았다.
〈수직(壽職)〉
심 확(沈  鑊):청(淸)의 손(孫)이며 수직(壽職)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였고 뜻이 곧으며 행실(行實)이 두터웠고 조선(祖先)의 가르침을 복습(復習)하여 모범(模範)이 되고 후인(後人)을 계도(啓導)하였다.
심 색(沈 穡):세장(世章)의 손(孫)으로 학문(學問)에 힘쓰고 처세(處世)를 잘하니 향당(鄕黨)이 추중(推重)하였고 정조조(正祖朝)에 수직(壽職)으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였고 향년(享年)이 팔십삼(83)이었다.
심방량(沈邦良):정(汀)의 현손(玄孫)으로 천품(天稟)이 관후(寬厚)하고 선행(善行)으로써 추중(推重)을 받았고 수직(壽職)으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였고 향년(享年)이 구십팔(98)이었다.
심세문(沈世文):확(鑊)의 子이며 수직(壽職)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였고 문행(文行)이 있어 항상 명망(名望)이 있었고 사우(士友)들이 추중(推重)하였으며 향년(享年)이 팔십팔(88)이었다.
심득주(沈得周):덕락(德洛)의 손(孫)이며 수직(壽職)으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였고 성품(性稟)이 관후(寬厚)하여 백세(百歲)를 향수(享壽)하여 두번 은혜(恩惠)를 받았다.
심한문(沈漢文):목(穆)의 목손(穆孫)으로 년치(年齒)와 덕행(德行)이 모두 높아 향당(鄕黨)에서 중망(重望)이 있었고 수직(壽職)으로 부호군(副護軍)이였고 향년(享年)이 팔십구(89)였다.
심경문(沈景文):청(淸)의 후손(後孫)이며 문행(文行)으로 항상 명망(名望)이 있어 향당(鄕黨)의 추중(推重)을 받았고 수직(壽職)으로 부호군(副護軍)이었으며 享年이 팔십팔(88)이었다.
심병문(沈秉文):유대(有大)의 증손(曾孫)으로 문사(文辭)가 풍부(豊富)하고 강의(剛毅)가 과인(過人)하였으며 수직(壽職)으로 부호군(副護軍)이었다.
심 하(沈 鍜):희대(希大)의 증손(曾孫)이며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동돈녕(通政大夫同敦寧)이었다.
심엽지(沈燁之):세훈(世勳)의 오세손(五世孫)이며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였다.
심능정(沈能鼎):호문(虎文)의 손(孫)으로 성품(性稟)이 조용하고 아담하며 도량(度量)이 크고 몸을 다스리되 근검(勤儉)으로 하고 사람을 대하되 온화하고 후(厚)하게 하며 형제간(兄弟間)에 우애(友愛)하고 일가중(一家中)에 외로운 사람을 많이 가취(嫁娶)시켰고 수직(壽職)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였고 향년(享年)이 팔십이(82)였다.
심강지(沈岡之):兌文(兌文)의 子로서 수직(壽職)으로 가의대부(嘉義大夫)였다.
심형지(沈亨之):만적(萬迪)의 증손(曾孫)이며 신진운(申晉運)의 문인(門人)으로 행동(行動)이 순수(純粹)하고 문장(文章)이 간결(簡潔)하여 후학(後學)을 교도(敎導)하였고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이었으며 향년(享年) 팔십삼(83)이었다.
심 옥(沈 鈺):호(湖)의 후손(後孫)이며 수직(壽職)으로 통정(通政)이었고 가정(家庭)에서 충효(忠孝)를 이어받고 마음을 경서(經書)와 사기(史記)에 잠겼다.
심의록(沈宜錄):온(溫)의 후손(後孫)이며 수직(壽職)으로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였고 근검(勤儉)을 법도(法度)있게 행(行)하므로 향인(鄕隣)의 추중(推重)을 받았다.
심능익(沈能益):원부(元符)의 후손(後孫)이며 수직(壽職)으로 통정(通政)이었다.
심능택(沈能宅):희대(希大)의 오세손(五世孫)이며 수직(壽職)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였고 성품(性稟)이 심중(沈重)하였고 근검(勤儉)을 스스로 지켰다.
심덕락(沈德洛):만집(萬緝)의 子이며 아들 득문(得文)의 수직(壽職)으로 공조참의(工曹參議)에 증직(贈職)되었고 문행(文行)이 있었다.
심태문(沈兌文):손(遜)의 후손(後孫)이며 아들 강지(岡之)의 수직(壽職)으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증직(贈職)되었다.
〈청기지발간자(靑己誌發刊者)〉
도청(都廳):심능기(沈能沂)
교정(校正):심능윤(沈能潤) 심의상(沈宜商)
편집(編輯):심상원(沈相元)
총무(總務):심상광(沈相光)
간사(幹事):심상태(沈相台)
수단(收單):심서택(沈瑞澤) 심의락(沈宜洛)
서사(書寫):심상춘(沈相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