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군지 |
심 해(沈 瑎):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여 景宗2年 壬寅3月에 도임(到任)하였고 甲辰8月에 만기(滿期)되어 벼슬이 갈렸고 백성을 사랑하고 부역(賦役)을 덜어주어 떠난 뒤에 비석(碑石)을 서면(西面)에 세웠고 서울에서 산다.
심락수(沈樂洙):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丙申12月에 정언(正言)에 임명(任命)되었고 丁酉正月에 도임(到任)하여 同年에 그만두고 돌아가서 서울에서 산다. 심규택(沈奎澤):음직(蔭職)으로 癸巳年에 부여(扶餘)로부터 이배(移拜)되어 甲午年2月에 도임(到任)하고 丁酉年2月에 그만두고 돌아가 양주(楊州)에서 산다. 심학홍(沈學弘):참의(參議)에 증직(贈職)되었고 정안공 덕부(定安公 德符)의 후손(後孫)이며 처음으로 들어왔다. 심천범(沈天範):참의 학홍(參議 學弘)의 후손(後孫)이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슬퍼함이 도에 지나쳤으며 집안이 본디 가난하여 나무하고 고기 잡아 공양(供養)하는데 정성과 힘을 극진히 하였다. 그 아버지가 중풍으로 두 팔이 마비되어 숟가락과 젓가락을 들지 못하거늘 누이고 일으키며 음식(飮食)을 먹이는데 반드시 부호(扶護)하고 밤마다 취침하기 전에는 감히 물러가지 않기를 50年동안 하루같이 하다가 그 아버지가 백살을 채우고 돌아가니 시묘(侍墓)살이 3年을 하였고 그 처 崔씨 또한 효도를 하여 고종경인년(高宗庚寅年)에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되었고 아울러 정려(旌閭)를 命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