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양속지(진주목사)

<효자(孝子)>
심득청(沈得淸):나이 겨우 7․8歲에 효동(孝童)이라 하였고 할아버지의 喪에 아버지가 늙고 병들어 집례(執禮)를 대행(代行)하여 삼년상(3年喪)안에 술 고기를 먹지 않고 중문(中門)에 들어가지 않으며 아버지 喪을 당하자 시묘(侍墓)살이를 끝나는데 맹수(猛獸)가 와서 호위(護衛)하였고 슬피 울어 눈물 떨어진 곳의 나무가 말라죽었고 유상(儒狀)으로 청포(請褒)하여 조봉대부동몽교관(朝奉大夫童蒙敎官)에 추증됨.
<효부(孝婦)〉
심씨(沈 氏):초계변문연(草溪卞文淵)의 妻로 구고(舅姑)를 잘 섬겼더니 그 시아버지가 눈병으로 않았는데 3年을 정성을 다하여 구호(救護)하자 눈이 다시 밝아졌고 그 시어머니가 머리에 종기가 나서 고통스러워 하자 빨아서 종기가 낳으니 인리(隣里)에서 칭송(稱頌)하였고 나라에서 표창(表彰)하였다.
〈목사(牧使)>
심방(沈  枋):己丑에 래임(來任)하여 辛卯에 卒하다.
심공유(沈公猷):丙戌에 來任하여 戊子에 사임(辭任)하다.
심원열(沈遠悅):丁巳에 래임(來任)하여 同年에 사임(辭任)하다.
심상필(沈相弼):乙巳에 래임(來任)하여 丙午에 사임(辭任)하다.
〈무과(武科)〉
심상돈(沈相燉):무과(武科)에 及第하여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과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심운경(沈雲慶):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였다.
심상익(沈相翼):壬辰年 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여 사과(司果)였다.
심경창(沈慶昌):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였다.
〈환계(宦階)〉
심수(沈  壽):장락원정(掌樂院正)에 증직(贈職)되었다.
심락생(沈洛生):참의(參議)에 증직(贈職)되었다.
심종립(沈宗立):예조참의(禮曹參議)에 증직(贈職)되었다.
심  일(沈  溢):호조참판(戶曹參判)에 증직(贈職)되었다.
심한구(沈漢球):가선(嘉善)에 증직(贈職)되었다.
심임택(沈任澤):절충장군부호군(折衝將軍副護軍)에 증직(贈職)되었다.
심응택(沈應澤):정릉참봉(貞陵參奉)이었다.
심한창(沈漢昌):가선(嘉善)에 증직(贈職)되었다.
심희택(沈憙澤):통정부호군(通政副護軍)이었다.
심취제(沈就濟):주역(周易)을 전공(專攻)하고 이기(理氣)의 辯에 발휘(發揮)함이 많았고 유집이권(遺集2卷)이 세상(世上)에 알려졌다.
심공유(沈公猷) 심원열(沈遠悅) 심상필(沈相弼)
〈총묘(塚墓)〉
심수(沈  壽) 墓:이반성면(二班城面) 장안리(長安里) 망천산(網川山) 자좌(子坐)에 있다.
심취제(沈就濟) 墓:이반성면(二班城面) 평촌리(坪村里) 매화산(梅花山) 갑좌(甲坐)에 있다.
심한창(沈漢昌) 墓:집현면(集賢面) 집현산하(集賢山下) 냉정리(冷井里) 유좌(酉坐)에 있다.
 <생진(生進)〉
심윤택(沈潤澤):진사(進士)였다.
〈문학(文學)〉
심한태(沈漢兌):만년(晩年)에 경서(經書)에 힘써 후학(後學)을 가르쳤고 수직(壽職)으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