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현 |
〈선생안(先生案)〉 현령(縣令)
심 징(沈 澂), 심사득(沈師得) 심정호(沈廷豪):丁亥8月에 도임(到任)하였고 己丑2月에 사임(辭任)하였다. 심해(沈瑎):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였고 壬寅3月에 도임(到任)하여 백성을 구휼(救恤)하고 부역(賦役)을 감(減)하여 주니 떠난 뒤에 서면(西面)에 비석(碑石)을 세웠고 甲辰8月에 만기(滿期)가 되어 사임(辭任)하고 돌아가 서울에서 살았다. 심낙수(沈樂洙):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丙申12月21日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으로써 제배(除拜)되어 丁酉正月에 도임(到任)하여 同年5月 사임(辭任)하고 돌아가서 서울에서 산다. 관안官案〉 심규택(沈奎澤):음직(蔭職)으로 부여현감(扶餘縣監)으로 있다가 癸巳7月29日 이배(移拜)되어 甲午2月16日 도임(到任)하여 丁酉2月28日 체임(遞任)하고 돌아가서 서울에 산다. 심능무(沈能武):심의완(沈宜琬) 심상희(沈相熹):합군후(合郡後) 군월(寧越)로 이임(移任)되었다. 〈입향(入鄕)〉 심 욱(沈 旭): 심학홍(沈學弘):처음으로 입향(入鄕)하였다. 〈효자(孝子)〉 심천범(沈天範)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슬퍼함이 지나쳤고 3年동안 주육(酒肉)을 물리치고 집이 본래 가난하여 나무하고 고기 잡아 供養함을 정성을 다하였고 그 아버지의 두 팔이 모두 마비되어 시저(匙箸)를 들지 못하거늘 누이고 일으키고 마시고 먹는데 반드시 부호(扶護)하였으며 매일 저녁 취침전(就寢前)에는 감히 물러나지 못하여 이런 일을 50年동안 하루 같이 하고 그 아버지가 백수(百壽)를 채우고 돌아가니 시묘(侍墓)살이 3年을 하고 妻 崔氏 또한 효도(孝道)를 하니 고종경인(高宗庚寅)에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추증(追贈)되고 아울러 정려(旌閭)를 命받았다. 〈효부(孝婦)〉 심 씨(崔 氏):심천범(沈天範)의 妻로 효성(孝誠)으로 시부모를 봉양(奉養)하고 시아버지가 머리가 가려우나 손이 저려 빗질을 못하니 빗질을 하여도 또 시아버지가 病들어 꿩고기를 먹고 싶다 하니 며느리가 그집 개에게 경계하여 말하기를 너는 내가 길렀으니 능히 나의 소원을 풀을 것이라 하니 개가 머리를 숙였다가 나가서 한 마리의 꿩을 잡아 가지고 왔고 뒤에도 또한 같이 하거늘 드디어 가져다 드렸고 시아버지가 돌아가자 그 남편이 시묘(侍墓)살이를 하였고 조석(朝夕)으로 제사지냄에 좋아하는 음식을 한결같이 生時와 같이 바치니 사람들이 그 효도(孝道)를 칭송(稱頌)하였고 고종경인(高宗庚寅)에 부부(夫婦)가 모두 정려(旌閭)를 命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