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청충접(花菁虫蝶: 꽃과 무우와 벌레와 나비)

잔풀들이 바다의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풀밭 위에 꼬리 긴 홍당무 하나가 놓여 있고, 그 밑으로는 꽃잎들이 점점이 떨어져 나간 패랭이꽃이 가지런히 누워있다. 홍당무 꼬리 위로는 모란꽃 한 가지가 거꾸로 엎어져 있다. 홍당무와 모란 사이에는 베짱이 수놈 한 마리가 기진한 듯 앞다리를 구부리고 풀밭에 머리를 처박고 있다. 하늘에는 검푸른 호랑나비와 노란 표범나비가 너울대고 있다.

이번에는 그림 전체를 몰골법으로 그렸다. 나비는 더듬이와 다리를 아주 가는 선으로 그려냈는데, 호랑나비 날개는 먼저 먹으로 그리고 그 위에 간격을 두어 파란색을 칠했고 뒷날개와 날개 꼬리 부분에는 붉은 점들을 찍었다. 표범나비는 먼저 날개를 노란색으로 물들인 후 그 위에 먹으로 무늬를 그렸다. 홍당무의 밑등 부분에는 역시 붉은 잔털을 심었다.

화면 오른쪽에 현재는 이런 시를 예서로 써 놓았다.
"나라 제일의 미인(모란꽃)은 예부터 서시(西施: 중국 춘추시대 월나라의 미녀)에 비유하고, 천향(모란의 향기)은 본디 동풍을 빌리지 않는다. (國色從來比西子, 天香元不借東風)"

이 시구는 『개자원화전』 제3집 화훼영모 영모화훼보에 실려있는 황전(黃筌)의 그림에 적힌 범경인(范景仁: 范鎭, 宋代의 文士)의 시를 옮겨 적은 것이다. (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