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괴석(百合怪石: 백합과 괴석)

백합이 피어난 풀밭에 괴석과 강아지풀이 같이 자리하고 있다. 괴석은 매우 괴이한 형태를 하고 있는데, 바위의 윤곽선을 짙은 먹으로 빠르게 둘렀다. 그리고 바위 표면은 여러 농담의 푸른색으로 물들이거나 붓을 옆으로 뉘어 쓸어내 기괴함이 더욱 강조되었다. 이런 바위의 표현법을 귀면준(鬼面皴)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바위가 너무 강하게 표현되어 뒤에 소담하게 피어있는 여러 백합꽃송이들이 더 여리게 보인다.

백합은 흐드러져 꽃잎이 떨어지기 직전인 모양, 만개한 모양, 막 꽃봉오리를 열어 꽃술이 드러난 모양, 오동통한 봉오리를 맺은 모양 등 시간의 순서에 따라 나타날 수 있는 모든 모습을 그려냈다. 꽃은 연분홍색으로 물들였고 꽃술은 빨간 선으로 그렸다. 꽃받침은 푸른색이고 줄기와 잎은 초록의 농담을 달리하여 줄기 윗부분으로 갈수록 옅어졌다.

허공에는 호랑나비과의 꼬리명주나비 한 마리가 날고 있다. 땅 표면에는 점과 선을 여러 번 찍고 그어대어 백합 주위의 풀밭을 잘 묘사하였다. 이렇게 괴석과 꽃과 벌레를 같이 그리는 것은 조선중기 화원화가 전충효(全忠孝)의 작품에서부터 보이는데 현재에게 와서 본격적으로 많이 그려진다.

현재의 괴석초충도는 소재가 괴석과 꽃 그리고 나비로 정형화되었다. 이런 괴석과 꽃과 나비라는 구성 형식은 이후 남계우의 호접도에서 중요한 형식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현재의 초충화훼화가 주로 화보를 방한 것이라는 한계를 가지고는 있지만 후대에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그 선구적인 위상을 높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현재(玄齋)"란 주문인장과 "심사정인(沈師正印)"이란 백문인장이 차례로 찍혀 있다. (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