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건우려(策蹇牛驢: 소와 나귀를 타고 가다)

사람 몸무게를 감당 못해 비틀거리는 소와 나귀를 채찍질하며 유람에 나섰다. 배경을 생략하고 인물과 소와 나귀만 그린 인물화이다.

두 사람 모두 죽립에 휘양을 쓰고 나섰다. 나귀 탄 사람은 한손에 고삐를 잡고 이쪽을 바라보며 무슨 얘기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고, 소를 탄 사람은 채찍을 쳐다보며 얘기를 듣고 있다. 소나 나귀나 탄 것은 다르겠지만 옮기는 걸음은 마찬가지다. 두 사람의 생김새는 서로 다르지만 가려는 길은 둘 다 같은 모양이다.

속세의 번잡한 일은 뒤로 물리고 고매한 뜻을 이루려는 길이다. 노둔한 나귀도 먼 길에 익숙치 않은 누렁소도 모두 두 사람의 친구가 된다. 갈 길은 눈 앞에 있지 않고 저 너머에 있기 때문에 서로 도반이 되어 길을 떠나는 것이다. 이런 느낌을 두 인물과 나귀와 소에 담아냈다. 그래서 그림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네 도반들의 살아있는 눈빛이다. "현(玄)" "재(齋)"라는 방형백문 인장이 다소곳이 한켠에 찍혀 있다. (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