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취적(騎牛吹笛: 소타고 저불다)

『고씨화보(顧氏畵譜)』 제2책에 실린 하규(夏珪)의 그림을 보고 그 구상을 살려 새롭게 그려낸 작품이다. 화보에는 좌우로 원산을 배치하고 중앙의 물가 토파(土坡)위에 서너 그루의 가지 휘어진 큰 나무를 세운 구도로 되어 있다. 나무 뒤로는 냇물이 흘러 앞에 있는 큰물에 합쳐진다. 도롱이를 쓴 인물이 소등에 타고 시내와 반대 방향으로 가는데 몇 걸음 뒤에 송아지가 따라온다.

그런데 현재는 이 그림에서 원경을 변화시켜 가운데 봉우리를 주산으로 삼고 물가 흙언덕 위에 엉성한 고목 나무 몇 구루를 심어 놓은 구도로 바꿔 놓았다. 숲속에 나무 사이로 자리 잡은 집 한 채의 구성도 화보와 비슷한데 방향이 반대이다. 고목나무 숲쪽으로 소타고 가는 인물의 표현도 거의 비슷하다. 도롱이 입고 소를 타고 송아지가 따라 가는 것까지 비슷한데 다만 젓대 부는 것과 방향이 서로 다를 뿐이다.

이처럼 현재는 화보에서 구성을 따오되 세부적인 표현에서는 자신이 익힌 전통화풍과 결합시켜 전혀 새로운 그림을 이루어 냈다. 현재의 독특한 풍취가 배어 있는 그림이다.

오른쪽 중간에 "현재(玄齋)"라는 관서를 넣고 "심씨이숙(沈氏頤叔)"이라는 방형백문을 관서 아래에 찍었다. 그리고 그보다는 자그마한 "현재(玄齋)"라는 방형주문 인장은 관서 오른편에 궁색하게 찍었다. (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