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촌낙조(漁村落照: 어촌의 저무는 햇살)

북송(北宋) 초의 사대부화가인 송적(宋迪, 1014경-1083이후)에 의해 소상팔경이 그려진 이후 남송(南宋)의 승려 혜홍(惠洪)이 "무성시(無聲詩) ․ 유성화(有聲畵)"개념을 적용하면서 소상팔경은 제화시(題畵詩)와 행보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소상팔경의 한 화제인 어촌의 노을 지는 저녁 풍경에 대해 조선전기 사대부 화가였던 인재(仁齋) 강희안(姜希顔, 1417-1465)의 동생 사숙재(私淑齋) 강희맹(姜希孟, 1424-1483)은 다음과 같이 읊었다.

"먼 산은 지는 해를 머금고,
맑은 강은 노을로 출렁인다.
어부들이 서로 모여 스스로 집을 이루니,
울타리는 쓰러져 세워도 다시 기우네.
끊어진 다리에 가을 물이 밝고, i
높은 숲에 저녁 갈가마귀 돌아온다.
노인네가 그물 거두려 갈대꽃 속으로 들어가,
물고기 새우와 웃으며 얘기하네.
(山遠啣斜日, 江澄漾彩霞. 漁人相聚自成家, 籬落整還斜. 橋斷明秋水, 林高返暮鴉. 阿翁收網入蘆花, 談笑說魚鰕.)"
(『私淑齋集』 卷5, 『瀟湘八景-漁村落照』)

왼편으로 높이 솟아 오른 절벽 위에는 수림(樹林)이 우거져 있는데 호초점(胡椒點)으로 표현되었다. 바위는 건필(乾筆)을 사용하여 거칠고 고졸한 맛을 준다. 강가를 따라 심어져 있는 나무들은 물을 한껏 머금어 올린 듯 새 가지의 연두빛이 싱그럽기 그지없고, 마을 뒤편에 있는 노거수 역시 화사한 복사꽃으로 새 생명을 피워내고 있다. 듬성듬성 자리한 수초들 사이로 잔물결이 이는 걸보니 이제 낮에 불어오던 강바람이 해가 지면서 산바람으로 바뀐 듯싶다. 그래서인지 수초들도 모두 강 쪽으로 몸을 누이고 있다.

이제 막 나루로 들어오는 배 앞에는 벌써 두 척의 배가 정박해 있다. 그 위에는 간단한 술자리도 마련된 모양이다. 멋들어진 자세로 난간에 걸터앉아 피리를 부는 이도 있다. 노래 가락이 바람을 타고 마을 전체에 울리고 있는 듯하다. 정겨운 어촌의 여유와 즐거움이 화폭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