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포귀범(遠浦歸帆: 먼 포구로 돌아오는 돛단배)

중국의 동정호(洞庭湖) 주변 아름다운 풍광 8곳을 그린 《소상팔경첩(瀟湘八景帖)》의 첫 번째 그림이다. 비록 심사정은 평생 중국에 다녀온 적이 없었지만 소상강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그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것은 심사정이 평소 대수장가였던 김광수(金光遂)와의 깊은 교분을 통해 중국의 선진 문물을 포함한 많은 진적들을 열람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부터 소상팔경(瀟湘八景)은 산수화의 중요한 화과로 정착되어 있어서 수없이 많이 그려져 왔기 때문이다.

여기 보이는 그림은 고기잡이를 나갔던 배들이 멀리서 포구로 돌아오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조선 후기 광산김씨(光山金氏) 가문 3대 문형(文衡)의 단초를 여는 서석(瑞石) 김만기(金萬基, 1633-1687)는 이 풍경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나룻가 봄 나무 희미해지니,
뱃사람 돛 펴고 늦게 돌아온다.
하늘 멀리 긴 바람 끝 없이 부니,
빈 강의 대여섯 척배 나는 듯이 달린다.
저녁 연기 흩어질 듯 관도(官渡)에 길게 걸렸고,
가벼운 물결 잔잔하여 낚시터 친다.
만일 노는 사람을 싣고 호해로 떠나면,
즐기는 마음 어기고 백년을 어찌 보낼까.
(津頭春樹望中微, 舟子開帆向晩歸. 天遠長風吹不盡, 江空五兩疾如飛. 暮烟欲散橫官渡, 輕浪初平掠釣磯. 儻載遊人湖海去, 百年寧遺賞心違.)"
(『瑞石集』 卷2, 「瀟湘八景-遠浦歸帆』)

원경의 쪽빛 산은 어둠에 사위는 듯 형체마저 흐릿해졌다. 쌍돛단배는 그 일행들과 함께 벌써 포구에 들어오고 있는데, 나머지 두 척의 돛단배는 아직도 멀리 있다. 절벽이 우뚝 선 근경과 한가롭고 넉넉한 강이 멀어져 가는 산과 함께 다채롭게 표현되었다. 숲으로 둘러싸인 채 차분하게 저녁을 준비하는 마을과 포구로 들어오는 배들이 어촌의 넉넉한 모습을 보여준다. "원포귀범(遠浦歸帆)"이라는 관서와 함께 "현재(玄齋)"라는 방형주문(方形朱文), "심사정인(沈師正印)"이라는 방형백문(方形白文)의 인장이 있다. (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