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려심춘(騎驢尋春: 나귀타고 봄을 찾다)

남종문인화(南宗文人畵)는 정밀한 사생보다는 대상이 지니고 있는 본질을 파악하고 그에 의지하여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남종화를 지향했던 심사정 역시 대상의 정치(精緻)한 묘사 보다는 자유로운 필묵을 통한 내면의 흥취를 중요시하였는데, 1748년 감동직(監董職) 파출 사건 이후로는 자유로운 화풍이 더욱 일신하게 되었다. 심사정은 이 사건 이후로 자신만의 고유한 화법에 더욱 진력하였고 그러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이제부터 살펴볼 8폭의 그림들로 하나의 화첩에 정첩되어 있다.

화첩의 말미에 심사정이 직접 옛사람들의 여러 화법을 본땄다고 적어 놓아 화첩의 이름이 《방고산수첩(倣古山水帖》이 되었지만, 심사정 자신만의 독창적인 화법이 완성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수작이다. 이 그림은 화첩의 처음에 등장하는 것으로 선비 하나가 나귀를 타고 봄을 찾아 나서는 모습이다. 선비가 찾은 곳은 교목(喬木)들이 즐비한 마을로 이곳은 벌써 완연한 봄의 정취가 물씬 느껴진다.

물을 한껏 머금은 버드나무는 연녹빛 새순을 촘촘히 단 채 늘어져 있고, 사이사이 잡수들도 녹음으로 번져나갈 태세다. 왼편 근경의 나무에는 심사정이 즐겨 사용한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의 하규잡수법(夏珪雜樹法)이 변형되어 그려졌고, 산의 표현에서도 중국의 화보풍을 변형한 심사정 고유의 남종화기법이 보인다. 전체적으로 따스한 색감을 사용하여 편안하고 정감있는 봄날의 정취를 표현하고 있다. (吳)